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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미친 짓일까

미운청년새끼, 이진송 지음

절구에 넣고 자근자근 빻아도 속이 시원하지 않은 옛말 중 하나가 “3대 거짓말 중 하나는 처녀의 시집 안 간다는 말”이다. 저 출처 불분명한 ‘카더라’ 때문에 결혼하지 않겠다는 내 신념은 입 밖에 내는 족족 “에~ 그런 사람이 제일 먼저 간다”는 놀림을 소환했으니, 가긴 어딜 간단 말인가 확씨.


다행히 20대 중반이 지나면서 친구들이 하나 둘 결혼하기 시작해서 ‘제일 먼저’라는 놀림은 떼는 줄 알았더니, 이제는 저출산 문제의 주범으로 지목 당하게 생겼다. 결혼을 기피하거나 늦게 하는 것, 결혼해서도 아이를 갖지 않는 것 모두 이기적이고 애국할 줄 모르는 괘씸한 대역죄인이니 오라를 받으라!


2016년 9월 23일에 열린 대한민국 취업박람회에서는 여기저기 ‘일취월장(일찍 취업해서 월급 받고 장가・시집가자)’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조금만 생각하면 곧 이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혼은 취업을 해야만 할 수 있나? 취업의 목표는 결혼인가? 그렇다면 결혼하지 않을, 결혼이라는 제도를 누릴 수 없는 이들은? 왜 기본 값은 장가, 즉 남성인지? 이것은 우리 사회가 N포세대를 바라보는 시선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N포세대의 가장 첫 번째 단위인 삼포세대가 포기했다고 여겨지는 것이 연애, 결혼, 출산이며 이들은 언제나 비장애 남성으로 표상된다.


아니 근데, 정말 그렇게들 결혼을 안 하나? 궁금해서 통계를 뒤져봤다. 2016년 4월 7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혼인・이혼 통계’에 따르면 2015년 결혼 건수는 30만 2,800건이다. 이는 2003년 30만 2,500건 이후 12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라는데, 인구 1,000명 당 혼인 건수를 뜻하는 조組 혼인율은 5.9건으로 사상 최저를 기록했다고 한다.


이는 주 혼인연령층인 20대 후반과 30대 초반 인구가 20만 명 감소한 탓이기도 하지만, 불경기와 실업률의 영향이기도 하다. 결혼이 늦춰지면서 초혼 연령 역시 높아졌는데, 2015년 여성의 평균 초혼 연령은 30.0세였다. 여성의 초혼연령이 30대에 진입한 것은 처음이다. 2005년에 비해 남자는 1.7세, 여자는 2.2세씩 높아진 것을 보면 앞으로도 이 결혼 연령대는 점점 더 높아질 예정이다.


결혼을 ‘비교적’ 안 하는 것도 사실이고, 만혼이 유행이라는 엄살도 결혼 연령대가 높아지는 현상을 보니 이해는 간다. 그러나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이 경제적으로 큰 부담을 초래하고, 여성들의 경력 단절을 동반하며, ‘맘충’ 같은 차별적 단어들이 육아하는 여성에 대한 혐오와 고립을 부추기는 상황에서 단순히 저출산의 원인을 비혼 인구에게만 돌릴 수 있을까


결혼과 육아를 가로막는 현실적 문제들을 외면한 채 인구절벽이 온다는 경고나 국가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위협으로 결혼과 출산을 촉구하려는 것은 개인을 출산 기계로 보는 시선을 증명할 뿐이다. 현실의 시궁창력은 언제나 상상을 뛰어넘는 바, 행정자치부에서는 ‘가임기 여성 지도’라는 것을 만들어 내놓기에 이르렀으니……. 가임기 여성을 인간으로 보는 ‘척’이라도 하기가 이렇게 힘들단 말인가.


게다가 출생율이 아니라 ‘출산율’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도 출산의 주체인 여성에게 책임을 지우려는 의도가 너무 노골적으로 보인다. 경제적 이유로 결혼과 출산을 포기한 세대에 대한 분석과 대안은 이미 충분히 논의된 바 있으니, 나는 좀 다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경제난과 높은 실업률 바깥의 이야기 말이다. 결혼적령기의 한복판에서, 기혼과 비혼 측의 이야기를 골고루 듣는 대나무 숲에 바람을 좀 불어넣어 보자.

 


지금의 2030 여성들은 결혼의 판타지가 통하지 않는 최초의 인류이다. 1980년대의 젠더사이드를 뚫고 태어나 겉으로 보기에는 성차별이 뚜렷하지 않은 시대에, 동일한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알파걸’이나 ‘여풍’ 따위의 단어가 등장하는 미디어를 접하며 자랐다. 결혼은 이렇게 구축한 자아가 시험대에 오르는 장이다. 연애에도 성별 권력이 개입하지만, 이것은 결혼에서 훨씬 더 노골적이고 굳건하게 작동한다. 결혼 적령기 여성들은 인터넷 게시판이나 SNS를 통해 결혼 이후 벌어지는 요지경에 대하여, 시월드의 상상을 초월하는 ‘갑질’에 대하여 숙지하고 있기 때문에 결혼이 사랑만으로 성사되고 유지되는 관계가 아님을 잘 안다.


또한 거의 대부분이 직업을 갖고 있고, ‘취집’을 노릴 거라는 환상 속의 김치녀와 달리 결혼과 출산 이후에도 일하기를 원한다. 직장은 단순히 일하는 공간일 뿐 아니라 아내나 엄마, 며느리라는 사적영역에서의 제한된 역할이 아닌 공적인 자아를 보장하기 때문이다. 이 공적자아는 ‘시월드’의 관용에 따라 평가가 널뛰기하는 불안정한 며느리보다 훨씬 중요하고 안정적이다(경력 단절과 유리천장이라는 차별 역시 견고하지만, 며느리의 인정 투쟁이 훨씬 치사하고 굴욕적이다).


나는 가끔 “며느리는 잘해봐야 본전”이라는 말을 하는데, 이 말을 들은 연장자 여성들은 일제히 웃음을 터뜨리며 “요즘애들은 진짜 다 아네!”라고 응수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라는 식의 판타지가 사라진 자리를 채우는 것은 치열한 일상의 전투들이다. 이 지점에서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느냐에 따라 결혼을 선택하거나, 하지 않는 갈림길이 발생한다. 그러나 각각 부딪치는 문제들의 근본적인 원인들은 유사하다. 조남주의 소설 《82년생 김지영》(민음사, 2016)은 이러한 특성을 고스란히 반영한 1980년대 태생 여자 주인공에게 그 해 가장 많았던 이름 ‘김지영’을 주고, 그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을 그려낸다.


지난 추석, 나는 부모님과 약간의 언쟁을 벌였다. 오랫동안 제사와 차례를 지내는 큰집의 장남과 맏며느리의 둘째 딸로 살아온 나는 더 이상 명절 때 겪는 성차별적인 관행을 견딜 수 없다고 판단했다. 부모님은 나를 차별 없이 길렀고, 할 수 있는 지원은 다 했으며, 가족 제도 안에서 나의 서사는 내가 여자거나 딸이라는 이유로 열등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사투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명절 때만 되면 내가 넘어설 수 없는 어떤 한계들이, <트루먼 쇼>의 엔딩에서 탈출을 감행한 트루먼이 만지게 되는 가짜 수평선처럼 선명해졌다.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대등해질 수 없었으며, 결혼한 여자의 위상이 어떤 것인지 엄마부터 나보다 나이 어린 사촌 올케의 경우까지 똑똑히 보았다. 어릴 때부터 꾹꾹 눌러 참았던 그것은 마침내 한계에 도달했고, 나의 태도를 지적하는 부모님과 충돌했다.


나를 가장 절망하게 한 것은 우리 가족과 친인척들이 대부분 선하고 화목하며 친밀하다는 데 있었다. 차라리 그들이 악랄했다면 나는 명절의 부조리한 풍경을 불화의 탓으로 돌리며 슬픔과 분노를 사사화私事化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사람들도, 어떤 사람들만 일하고, 밥을 늦게 먹고, 어떤 절차에 참여하지 못하는 시스템 앞에서는 공모자일 수밖에 없었다. 개인의 선함은 구조의 문제 앞에서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


개인은 사라지고, 가사 노동력으로서의 성별만이 유효했다. “네가 도와줘봤자 얼마나 일하냐”라는 말을 들었지만 중요한 것은 노동의 양이 아님을, 나는 서러움에 북받쳐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그림으로 그린 듯한 스윗 홈에서 자란 나는 그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떤 희생과 특정 성별, 특정 개인의 특수 노동을 필요로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나는 결혼이나 행복한 가정을 상상하거나 원하지 않는다. 기준에 미달하는 아내 혹은 엄마에게 사회는 얼마나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는가. 나는 엄마처럼 대단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결혼이라는 제도 안의 척박한 땅을 개척할 자신이 없었다.


나는 예정된 낙오자였고, 예비 불량 신부이자 나쁜 며느리이자 이기적인 엄마였다. 나는 결혼을 선택하지 않는 동시에 포기했다. 그리고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나와 같은 연령대의 결혼한 여성들의 모습을 보았다. 자신이 노력하여 쟁취한 사회적 지위에 있으면서, 적어도 가정에서는 남편과 대등하려고 노력하던 그들은 명절에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면서 절망하고, 좌절하고, 무너지고 있었다. 가정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문제의 핵심은 동일했다.

 

미운청년새끼
이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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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하게 헤어지자

내 마음을 부탁해, 박진영 지음

《내 마음을 부탁해》 p.120-123 

 

감정을 흘려보낸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라는 책에는 감정과 관련하여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수도꼭지를 틀어놓고 감정으로 세수를 하라.”

 

슬프고 우울한 감정이 들 때 그것들을 거부하고 억지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일단 그대로 느낀다.

“아, 이것이 슬픔이구나, 외로움이구나”

라고 한껏 느낀다. 그러고 나서 “이제 충분하다. 충분히 슬픔을 느꼈다” 하며 감정을 보내주라는 얘기다.

 

정리하면 다음의 세 단계와 같다.


1. 감정을 있는 그대로 과장하지 않고 한껏 느낀다.
2.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이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며칠 안에 지나갈 것임을 인지한다.
3. 충분히 느꼈다고 생각하면 ‘끝’을 선언한다.
감정을 보내준다.

 

결국 감정을 느끼는 것은 ‘나’이다.

나여야 한다.

감정이 나를 잡고 휘두르는 게 아니라 내가 감정을 느끼고 다스리는 ‘주체’가 되는 것이다.
어떤 감정이 찾아왔는지 파악하고, 필요한 만큼 느끼고, 이제 되었다고 생각될 때 보내줄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살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다양한 감정과 마주친다. 그때마다 휘둘린다면 우리는 일상을 영위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모두 나름의 방법으로 감정 조절을 하며 살아간다. 이런 식으로 감정을 한껏 느끼고 보내주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것이다.

 

다만 조심해야 하는 것이 있다. 감정을 보내기로 했으면 잘 보내줘야 하는데 헤어진 전 남친, 전 여친처럼 시도 때도 없이 다시 그 상황을 떠올려보고 그 감정을 되살려가며 계속 스스로를 괴롭혀서는 안 된다.

 

이를 심리학 용어로 ‘곱씹기rumination’라고 한다. “그때 왜 그랬지?”라는 부끄러움이나 실망감, 좌절, 화 등을 일이 끝난 한두 달 뒤에도 지속적으로 끌어오며 붙들어두고 있는 것이다.

 

혹부리영감의 혹처럼 감정을 보내주지 않고 한 구석에 혹같이 달고 있을 경우 심하면 우울증, 불안증상, 섭식장애 등을 겪을 수 있다.


보내주기로 했으면 깨끗하게 보내줘야 한다.

 

내 마음을 부탁해
박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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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갔던 바다를 다시 찾았다

13월에 만나요, 용윤선 지음

더운물에 몸을 씻고 수건을 뒤집어쓴 채 바다가 보이는 창 앞에 서 있는다. 사흘째 아침이다. 아침마다 바다가 보이는 창 앞에 오래오래 서 있는다. 기도하는 듯, 노래를 부르는 사람의 노래를 부르기 전의 호흡처럼 숨쉰다.

 

“바다 이름이 뭐였죠?”
“협재입니다.”
뒤에 서 있던 숙소 주인이 ‘협재’라고 말한다.

 

바다가 하나라는 생각을 하고 살았다. 그런데 협재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바다는 모두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바다가 사람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바다를 닮아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바닷가 집 사람처럼 오래오래 소리 내어 책을 읽어본다. 어떤 질서를 가지고 풀어헤친 머리카락 같은 바닷물이 움직인다. 이렇게 오래오래 들여다보면 알 수 있는 것들이 분명히 있는데, 당신을 들여다보지 못한 채 당신이 나를 들여다보기만을 바라고 바랐다.


유난히 과일을 좋아했었지. 칠월에는 수박을 좋아했었다. 수박 한 통을 사서 숙소를 옮길 때마다 들고 다녔었다. 지금 이 숙소는 그때 옮겨다녔던 숙소 중 마지막 숙소이다. 아침이면 수박을 썰어 한 접시 놓아두고, 껍질의 하얀 부분을 얇게 썰어서 얼굴에 올려주었었다.

 

“누워봐봐. 이거 올려놓고 음악 틀어주게.
수박 껍질 팩하고 수박 먹자.”

“귀찮아. 당신이나 하시든지.”

 

당신은 음악 소리보다 더 크게 흥얼거렸었다. 그때는 몰랐었다. 수박을 보면 당신이 생각나게 될 줄은. 어제는 숙소 주인이 수박을 세 조각 주었다. 숙소 일층 카페에 앉아 수박과 아이스커피를 먹으며 바다를 한참 보고 있다가 당신을 한번 불러보았다.

 

“당신한테 나는 뭐야?”
“함께 나누고 싶은 우주.”
“무엇을 나눌 테야?”
“풍경, 음악, 오늘 날씨, 음식, 사람 그리고 몸의 냄새.”
“몸의 냄새?”
“함께 숨을 쉬어야 가능한 일이지. 우주처럼.”

 

나보다 더 함께 나누고 싶은 사람을 발견했다고 했다. 태어나서 처음 맥이 풀리는 것을 경험했다. 맑은 물에 푸른 물감이 한 방울 떨어지는 순간처럼 당신을 놓았다. 당신을 놓을 수 있는 것, 놓겠다는 의지가 나에게는 자존심이었을 것이다. 어제는 숙소 주인이 준 수박 세 조각을 모두 먹으며, 기억까지 빼앗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기억으로 각자의 다른 공간을 만들어 그 공간에서 다른 나무를 키우는 방법도 있을 수 있겠다.

그래, 나보다 더 함께 나누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 맞다. 그 사람이 내가 당신을 생각하는 것보다 더 깊이 당신을 생각한다고는 믿지 않지만……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 다른 사람을 발견했다는 말도…… 우리 역사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왜 나는 당신의 숨소리가 자꾸 듣고 싶은가. 당신의 머리카락을 풀어헤쳐놓은 것 같은 협재 바다에서 이토록 익숙한 숨소리가 들리는가.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숙소 주인일 것이다. 숙소 주인의 목소리는 작아서 잘 들리지 않는데 열심히 들으려 하면 속삭이는 듯하다. 작은 목소리 덕분에 그의 미소가 먼저 스며들곤 한다. 전복회가 있다면서 함께 먹잔다. 파도 소리를 들으며 눈을 뜬 아침, 소담스럽게 씻고 바다를 바라보다가 화이트 와인을 곁들인 협재 아침의 전복회. 사흘을 같은 집에 있다보니 조금은 식구가 된 듯하다. 사흘이 아니다. 몇 해 전 당신과 함께 지낸 며칠을 합하면 열흘 남짓이다. 숙소 주인은 늙지도 않는 모양이다. 그대로이다. 전복회를 먹으며 숙소 주인이 우리를 기억하지 않았으면 바라본다.

 

“아침부터 전복 비리지 않으세요?”
“와인과 제법 잘 어울리네요.”
“손님이 선물로 주고 가신 건데 혼자만 맛있는 거 먹기가 그래서. 일찍 일어나시는 것 아니까요. 문을 두드려봤어요.”
“뭐 좀 먹어볼까 그러던 중이었어요.”
“삼 년 만이시죠?”
“…….”
“부탁 하나 드려도 될까요? 두번째 오시는 손님은 제게 특별해요.”
“예. 말씀하세요.”
“다음에 또 찾아주세요.”

 

숙소 주인과 나는 크게 웃었다.

 

“예. 또 와야죠. 또 오고 싶을 것 같아요.”
“방 책상 서랍에 방명록이 있어요.
두번째 오셨으니 잘 아시겠지만……
이번에도 부탁드려요.”

 

나는 방에 들어와 책상에 앉는다. 서랍을 연다. 바싹 구워진 바게트 빵의 표면 같은 두꺼운 공책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 문을 열어준다. 나는 일어나서 창문을 연다. 바닷소리에 귀를 기울여본다. 당신은 방명록을 적었는지…… 기억에 없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겨 읽어본다. 공책이라기보다는 책 같다.
눈에 익은 글씨가 보인다.
당신 같다.
당신이다.
바닷소리가 창문 안으로 밀려들어온다. 귀가 먹먹하다. 당신의 숨소리로 내가 숨을 쉬고 살았음을 알겠다.

 

13월에 만나요
용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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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와 악수하는 법

우리는 나선으로 걷는다 , 한수희 지음

사랑을 통해 우리는 자신을 더 많이 알게 된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 
자신을 더 많이 알게 되는 때는
사랑에 실패한 후부터다. 

 

누군가에게 처절하게 버림받고,
가루가 날릴 정도로 자존심이 분쇄된 후에야
우리는 평생을 외면하느라 노력해 왔던
자신의 진짜 모습을 똑바로 볼 수 있다. 

 

우리가 삶에 대해 느끼는 두려움의 근본 원인, 
우리의 가장 못나고 추한 부분, 
잊어버리려 애썼던 꿈. 
이것들은 그 위에 차곡차곡 쌓아 올렸던 허상들을
억지로 걷어 낸 후에야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다.

 

사랑이 아니었다면
아마 우리는 훨씬 덜 상처받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덜 여문 채로 나이를 먹었을 것이다. 
내가 사랑을 하면서 저지른 실수들은
어쩌면 필연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시간을 돌려 다시 사랑에 빠진다면
그때처럼은 하고 싶지 않다. 

 

그러니까 최소한 사랑 앞에서
나를 약자 취급하지는 않고 싶다. 
나를 존중하고 또 상대를 존중하겠다. 
연애에서 여자가 맡아야 할 역할에 연연하지 않겠다. 
그렇다고 그 역할에서 벗어나느라
깐깐하게 굴지도 않겠다. 
입을 가리지 않고 큰 소리로 웃겠다. 
타협하고 또 타협하겠다. 
농담을 자주 하고 장난을 많이 치겠다. 
미래를 걱정하느라
현재를 불안 속에서 흘려보내지 않겠다. 
소소한 즐거움을 많이 누리려고 노력하겠다. 
나에게 없는 것을
상대에게서 찾으려고 애쓰지 않겠다. 
건강한 인간이 되겠다. 
상대를 내 취향대로 바꾸려고 하지 않겠다.

 

우리는 나선으로 걷는다
한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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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은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벨 훅스 지음

페미니즘 정치 ― 우리가 서 있는 곳

페미니즘이란 간단히 말해서 성차별주의와 그에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끝내려는 운동이다. 10년도 더 전에 쓴 『페미니즘―주변에서 중심으로』에서 페미니즘을 이렇게 정의했었다.

그때만 해도 누구나 이렇게 페미니즘을 정의했으면 좋겠다 싶었다. 나는 이 정의가 퍽 마음에 들었는데, 남성을 적으로 돌리지 않는 듯했기 때문이다.

 

성차별주의를 문제로 지목하면 상황의 본질을 곧장 파고들게 된다. 실제로 페미니즘을 이렇게 정의하면 성차별주의를 공고히 하는 주체가 여성이든 남성이든, 아이든 어른이든 상관없이 성차별주의적 사고와 행동이 문제라는 걸 일깨워줄 수 있다.

게다가 이는 구조적으로 제도화된 성차별주의에 대한 이해까지 포함할 정도로 포괄적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 정의는 일종의 열린 결말과도 같다. 페미니즘을 이해하려면 성차별주의부터 알아야 한다고 이 정의는 시사하고 있다.

 

페미니즘 정치의 옹호자라면 다 알겠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성차별주의가 뭔지 잘 모르고 설사 안다고 해도 이를 문제시하지 않는다. 대중은 페미니즘을 항상 남성과 동등해지려는 여성들에 관한 것이라고만 생각한다.

그래서 페미니즘을 반反남성주의로 여기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사람들이 주로 가부장제적인 대중매체로부터 페미니즘에 대한 정보를 얻는 현실에서 페미니즘 정치에 관한 오해가 비롯된다.

 

대개 그들은 주로 젠더 평등에 헌신하는 여성들의 페미니즘을 가장 많이 접한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나 여성과 남성이 가사노동과 육아를 공동으로 분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식의 페미니즘 말이다.

그들이 보기에 이렇게 주장하는 여성들은 대개 백인이고 물질적으로 특권층에 속한다. 대중매체에서 접한 바에 따르면, 여성해방운동은 임신중단을 선택할 자유, 레즈비언일 자유, 성폭력과 가정 폭력에 항거할 자유를 위해 싸운다. 많은 이들이 이런 문제들 중에서도 직장 내 젠더 평등 즉, 동일노동 동일임금 주장에는 공감한다.

 

‘기독교’ 문화를 바탕으로 하는 미국 사회에서는 신이 정한 바에 따라 가정에서는 여성이 남성의 뜻을 따라야 한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 취직을 하는 여성들이 아무리 많아도, 가정 내에서 실질적 가장인 여성들이 아무리 많아도, 미국 사람들은 가정에 성인 남성이 있건 없건 남성 중심주의 논리가 고스란히 유지되는 가정생활을 이상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페미니즘 운동이 반남성주의라는 그릇된 인식은 모든 여성의 공간은 필연적으로 가부장제와 성차별주의가 끼어들 여지가 없는 장소일 수밖에 없다는 그릇된 생각과 결부되었다. 심지어 페미니즘 정치에 관련된 사람들을 비롯해 수많은 여자들이 이렇게 믿었다.

 

남성중심주의에 분노로 대항했던 초기 페미니즘 활동가들 사이에 반남성 정서가 팽배했던 것은 사실이다. 여성들이 해방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바로 남성중심주의라는 불의를 향한 분노였으니 말이다.

(다수가 백인이었던) 초기 페미니스트 활동가들은 대부분 페미니즘 운동에 뛰어들기 전 남성들과 함께 계급주의와 인종차별철폐를 위해 싸운 이들이었다.

그런데 이 남성들은 세상을 향해서는 자유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하면서 정작 동료 여성들은 무시했고, 이런 환경에서 여성은 남성중심주의의 본성에 대해 뼈저리게 깨닫게 됐다.

사회주의를 위해 싸운 백인 여성이든, 인권과 흑인해방을 위해 싸운 흑인 여성이든, 원주민의 권리를 위해 싸운 아메리카 원주민 여성이든 이 사실만은 확실히 알게 됐다.

남성들은 자기네가 직접 운동을 이끌고 여성들은 잠자코 뒤따라오기를 원했다.

 

이러한 급진적 자유투쟁을 경험하면서 진보적인 여성들의 내면에서 반란과 저항의 정신이 깨어났고 마침내 그녀들은 동시대 여성의 해방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현대 페미니즘이 진보하면서, 다시 말해 우리 사회에서 남성만 성차별주의적 사고와 행동을 두둔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여성들이 깨달으면서 반남성주의는 더이상 운동의 이념에 영향을 미치지 않게 되었다.

여자도 마찬가지로 성차별주의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후 운동은 젠더 평등을 이루기 위한 전면적인 노력으로 그 중심이 옮겨갔다.

 

하지만 함께 연대해 페미니즘을 진전시키려는 여성들의 발목을 그녀들 내면의 성차별주의적 사고가 붙잡았다.

여성들이 경쟁하듯 반목하는 한, 자매애는 강력해질 수 없었다. 모든 여성은 어떤 식으로든 남성중심주의의 피해자라는 현실 인식만을 토대로 세워진 유토피아적 자매애는 계급과 인종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자 무너져버렸다.

 

현대 페미니즘에서는 초기부터 인종 논의에 앞서 계급차별에 대한 논의부터 등장했다.

다이애나프레스 출판사는 이미 1970년대 중반 여성들 사이에 존재하는 계급 적대를 꿰뚫어 보는 혁명적인 통찰이 담긴 『계급과 페미니즘Class and Feminism』이라는 에세이집을 출간했다.

결코 ‘자매애는 강력하다’는 믿음을 무시해서 이런 논의를 한 게 아니다. 이 책은 오히려 우리가 젠더와 계급, 그리고 인종을 통해 여성이 다른 여성을 지배하고 착취하는 방식에 맞서야만 비로소 투쟁으로 맺어진 자매들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으며 더불어 이러한 차이들을 다루는 정치적인 장을 마련한 셈이었다.

 

현대 페미니즘 운동의 초기부터 흑인 여성들은 개별적으로 적극적인 활동을 했음에도 운동의 ‘주역’으로 대중매체의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대개 페미니즘 운동에서 활동한 흑인 여성들은 (다수의 백인 레즈비언들과 마찬가지로) 혁명적 페미니스트revolutionary feminist들이었다.

이들은 이미 페미니즘의 미래를 기존 사회체계 내에서 여성이 남성과 평등해지는 것으로만 그리려는 개혁주의 페미니스트reformist feminist들과 불화중이었다.

그러나 페미니즘 운동의 여러 그룹에서 인종 문제를 널리 논의하기 전부터 이미 흑인 여성들은 (그리고 그들의 혁명적 동맹자들은) 기존의 백인우월주의-자본주의-가부장제를 그대로 유지한 채로는 절대 여남이 평등해질 수 없다는 사실을 훤히 꿰뚫고 있었다.

 

페미니즘 운동은 초기부터 양극화되었다. 개혁파들은 젠더 평등을 더 중시했다. 혁명파들은 기존 체계를 조금 손보는 것으로 여성이 좀더 권리를 차지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아예 그 체계를 뜯어고치고 가부장제와 성차별주의를 무너뜨리고 싶어했다.

그러나 가부장제하의 대중매체는 이런 혁명파의 주장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당연히 이 주장은 주류 언론의 관심을 전혀 받지 못했다.

예나 지금이나 대중의 상상력을 지배하는 ‘여성해방’의 이미지는 남성의 것을 여성도 가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목표는 혁명파의 주장과 달리 수월하게 받아들여졌다.

경기침체와 실업 등 미국 경제에 불어닥친 각종 변화들로 시민들이 일터에서 젠더 평등 개념을 받아들이기 좋은 상황이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인종차별이 만연한 현실을 감안하면, 백인 남성들이 여성에게 권리를 보장함으로써 백인우월주의를 유지하는데 득이 된다면 여성의 권리 확대를 좀더 전향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은 납득 가능하다.

인종차별이 법적으로 금지되고 흑인이, 콕 집어 말하자면 흑인 남성이 일터에서 백인 남성과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게 된 민권운동의 성공 이후 백인 여성들이 자유의 확대를 주장했다는 사실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일터에서의 젠더 평등에 주로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개혁적 페미니즘은, 개혁을 요구하면서도 동시에 사회구조를 총체적으로 재편해 나라 전체가 근본적으로 성차별주의에 맞서게 해야 한다는 현대 페미니즘의 급진적인 토대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특히 특권층 백인 여성들을 중심으로 여성들이 기존 사회구조 내에서 경제력을 획득하게 되면서 혁명적 페미니즘의 비전은 고려 대상에서 멀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혁명적 페미니즘을 가장 잘 포용한 곳은 학계였다. 학계에서는 혁명적 페미니즘을 이론으로 정립해 발표했지만, 정작 대중은 이 이론에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결국 이 이론은 우리 중에서도 학식이 뛰어나고, 교육 수준이 높고, 대개 경제적으로 윤택한 사람들이 접할 수 있는 특권층의 담론으로 자리잡았으며 그런 경향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페미니즘으로의 변혁에 관한 해방적인 비전을 제시하는 『페미니즘―주변에서 중심으로』와 같은 작업은 결코 주류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대중은 이런 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들어본 적도 없다.

따지고 보면 대중은 이런 책에 담긴 메시지를 거부한 적이 없다. 그게 무슨 메시지인지도 모르니 말이다.

 

주류 세력인 백인우월주의-자본주의-가부장제의 입장에서는 반남성주의 노선을 취하지 않거나 여성이 남성과 같은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주장에 중점을 두지 않은 페미니즘 이론을 억압하는 편이 득이었고 개혁적 페미니스트들도 이들의 목소리를 지우려 애썼다.

개혁적 페미니즘은 그들에게 계층 이동의 수단이었다. 그들은 일터에서 남성중심주의의 속박에서 벗어났고 좀더 주체적인 라이프스타일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성차별주의가 여전히 만연한 상황에서도 그들은 기존 체계 내에서 최대한 자유를 누리고자 했다. 그리고 그들이 거부한 궂은일은 착취당하는 종속된 하층 계급 여성들이 떠맡을 터였다.

 

그들은 노동자 계급과 가난한 여성들의 종속을 수용하고 오히려 이와 결탁함으로써 기존 가부장제 그리고 그에 수반되는 성차별주의와도 동맹을 맺은 셈이다.

그뿐만 아니라 직장에서 남성과 대등한 대우를 받으며 일한대도, 가정에서는 대등하길 원할 때만 권리를 요구하는 이중생활을 영위할 권리를 바란다.

레즈비언이라면 직장에서 남성과 동등하게 대우받는 특혜를 누리면서, 한편으로는 계급 권력을 이용해 남성과 거의 혹은 전혀 접촉하지 않아도 되는 가정생활을 꾸릴 수도 있다.

 

라이프스타일 페미니즘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여성의 수만큼 다양한 페미니즘이 존재할 수 있다는 개념을 낳았다. 별안간 페미니즘에서 정치성이 서서히 옅어졌다.

그리고 정치 성향이 보수건 진보건 여성이라면 페미니즘을 평소 라이프스타일에 적용할 수 있다는 주장에 힘이 실렸다.

분명 이런 식의 사고 덕분에 페미니즘은 좀더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었는데, 여성이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문화에 도전해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지 않아도 페미니스트일 수 있다는 전제가 그 기저에 자리하기 때문이다.

 

임신중단 문제를 예로 들어보자.

페미니즘이 성차별주의에 근거한 억압을 종식하려는 운동이고 여성에게서 임신선택권을 박탈하려는 시도가 그런 억압의 한 형태라면, 임신중단권을 반대하면서 동시에 페미니스트가 될 수는 없다.

자신은 임신중단을 선택하지 않더라도 여성은 다른 여성의 선택권을 지지하면서 동시에 페미니즘 정치를 옹호할 수 있다. 임신중단권을 반대하면서 페미니즘을 옹호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타인을 착취하고 억압하여 얻은 권력에서 파생했다면 ‘파워 페미니즘’이라는 개념도 있어서는 안 된다.

 

페미니즘 운동이 선명한 뜻을 상실했기 때문에 페미니즘 정치는 그 기세를 잃고 있다. 그러나 우리에겐 그러한 뜻이 있다. 그것을 되살리자. 널리 알리자. 새롭게 시작하자.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세상에 제대로 전하자.

티셔츠를 입고 자동차 범퍼에 스티커를 붙이자. 엽서를 쓰고 힙합음악으로 만들자. 텔레비전과 라디오 광고며 곳곳에 자리한 광고판으로 페미니즘을 알리자. 갖가지 인쇄물로 페미니즘을 전파하자.

이로써 페미니즘이 성차별주의적인 억압을 종식하려는 운동이라는 메시지를 간명하면서도 강력하게 이 세상에 알릴 수 있다. 거기서부터 시작하자. 이 운동에 다시 불을 붙이자.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벨 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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