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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로 고민하지 않기 위해 
하지 말아야 할 것

나는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이구치 아키라 지음

참지 않는다

-건강한 행동양식

 

한 구인사이트의 조사에 따르면 회사를 그만두는 가장 큰 이유는 인간관계라고 한다. 업무나 대우에 관한 불만보다 인간관계 악화가 더 큰 스트레스라는 것이다.

실제로 싫어하거나 맞지 않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의지력이 소모된다. 그러면 성과도 부진해서 열심히 하고자 하는 동기부여도 사라진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는 것은 그런 원리다.

 

그렇다면 왜 싫어하거나 맞지 않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의지력이 줄어드는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은 꾸준하고 집요하게 우리를 피로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기 때문이다.

 

우선 그들은 걸핏하면 부정적인 말을 하고, 이유도 없이 안 된다고 단정짓거나 긍정적인 제안을 해도 안 될 게 확실하다며 퇴짜를 놓는다. 그러면 부정당한 쪽은 어떻게 될까?

아마도 스스로를 쓸모가 없다거나 자신이 한 제안은 검토할 가치도 없는 건가 싶어 스스로에 물어볼 것이다.

자문자답을 거듭하게 되면서 이런 무의식적인 사고와 결심이 의지력을 크게 낭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관계는 왜 어려운 걸까? 아무리 노력해도 상대방의 감정이나 성격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실한 사람일수록 자신이 먼저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결심하고 참아버린다. 하지만 그렇게 참는다고해도 상대와 관계가 개선될 여지는 거의 없다.

오히려 상대로부터 이의제기를 하지 않는다는 일로 업신여김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무의식적으로 참는 것은 지금 당장 그만두자. 참고 견디면 복이 온다지만 인간관계는 3년은커녕 3분도 참지 않는 편이 좋다.

가치관이 달라 싫거나 맞지 않는 사람에게 시달리며 의지력을 낭비할 바에야 과감히 관계를 부숴버리는 편이 낫다. 그렇게 해야만 성공의 길도 열린다.

 

 

싫은 사람과 억지로 관계를 유지하지 않는다

- 짝의 법칙

 

사람들은 왜 싫은 사람과도 억지로 관계를 유지할까? 아마도 스스로 인간관계를 선택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옛날에는 직장, 학교, 지역 내 인간관계가 전부였다. 그 속에서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은 따돌림을 당하는 등의 불이익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을 억누르고 집단 내 인간관계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 젊은 직장인들의 생각은 다르다관심 있는 SNS 그룹에 들어가거나 뜻이 같은 사람들이 모이는 토론회나 세미나에 참가해 얼마든지 새로운 만남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울며 겨자먹기로 억지 참아가면서까지 기존관계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이제는 싫은 사람과도 교제하지 않고도 잘살아갈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그렇다면 딱히 좋지도 싫지도 않은 감정이 드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은 어떨까? 이런 교제도 가급적 하지 않는 편이 좋다.

모든 사람과 잘 지내는 편이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 같지만 사실 알고 보면 팔방미인 타입이 손해 보는 경우가 훨씬 많다.

 

가장 큰 원인이 시간을 빼앗기기 때문이다. 모든 메일에 일일이 답장을 보내고 SNS 이벤트마다 참가하고 동료나 친구들의 술자리 권유에도 빠짐없이 참석한다.

그러면 시간이 부족할 수밖에 없으며, 덩달아 소비되는 의지력도 많아진다.

예를 들면 친구 사이에 의견대립이 있을 때 팔방미인 타입은 양쪽 모두에게 동조한다. 양쪽 모두를 배려할 생각으로 한 행동이었겠지만 상반되는 의견에 동의하는 것은 자신의 속마음을 속이는 것과 다름없다.

 

그런 작은 거짓말을 계속하다 보면 자신의 정체성이 흔들리게 된다. 그러면 무의식중에 진짜 내 생각은 뭘까?’라는 자문자답이 시작되어 의지력을 낭비하게 된다.

따라서 정말 좋아하는 사람과만 친밀하게 지내는 것이 좋다. 인간관계의 범위가 좁을수록 인생은 순조로워진다.

 

현실세계뿐만 아니라 인터넷상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나는 싫은 사람과는 사귀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금까지도 지키고 있다.

업무상 SNS를 사용하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메일이나 댓글을 자주 받는다. 그 중에는 명백하게 공격적인 사람도 있어서 내가 글을 올릴 때마다 악플을 단다.

그런 사람은 즉시 차단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가장 좋다.

 

노골적으로 차단하면 상대가 불쾌해할까봐 걱정되겠지만 부정적인 댓글을 읽고 의지력을 낭비할 바에는 미움 받는 편이 훨씬 낫다.

또 일부러 반론해서 상대방을 부정하는 것보다는 침묵으로 차단하는 게 좋다. 애꿎은 원한을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내가 무시로 일관하면 상대도 다른 공격대상을 찾을 것이다.

 

반드시 명심하자. 인터넷상의 인간관계가 무너진다고 해도 실질적인 피해는 거의 없다. 그러므로 미움 받아도 상관없다고 마음먹고 본인이 갖고 있는 의지력을 절약하는 데 앞장서보자.

 

 

멀리 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빨리 답장하지 않는다

-느림보 거북이 작전

 

친하게 지내봤자 아무 이득이 없는 사람이나 두 번 다시 만날 일 없는 사람이라면 즉시 차단해도 상관없다.

하지만 업무상 알게 된 사람처럼 가능하면 원만하게 거리를 두고 싶은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에는 에둘러서 나는 당신을 좋아하지 않고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것을 전한다.

 

이를테면 메일이 오면 일부러 늦게 답한다. 평소에는 24시간 이내로 답을 하지만 거리를 두고 싶은 사람에게는 3일쯤 지나서 답장을 한다.

또 식사나 술자리를 권유받으면 바쁘다는 핑계로 거절한다. 일이 많아 바쁘다, 개인적인 일로 바쁘다, 공부에 시간을 할애하고 싶다 등 누구나 바쁜 상황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가장 무난한 거절방식이 될 수 있다. 어떻게 거절할지 고민하는 것은 의지력을 낭비시키므로 늘 바쁘다고 말해두자.

 

이처럼 바쁘다는 이유를 핑계로 거절하는 것이 세 번 정도 계속되면 상대방도 더 이상 권하지 않게 된다.

그러면서 저 사람은 늘 바쁘니까 술자리에는 참석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인식하기 때문에 업무 외에 연락은 오지 않게 된다.

 

 

나는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이구치 아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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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심하지 않을수록 성공은 커진다

나는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이구치 아키라 지음

누구나 같은 양의 의지력을 갖고 있다

- 의지력 질량보존의 법칙

 

의지력 질량보존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 누구나 같은 양의 의지력을 갖고 있다는 뜻으로 성공하는 사람들은 의지력을 낭비하지 않고 잘 활용하는 공통점이 있다.

물론 여기에 반기를 들고, 의지력을 절약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막대한 양의 의지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도 예전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의지력이란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재능과도 같은 것으로 의지가 강한 사람은 의지력의 총량이 원래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공을 거머쥐고 저명한 경영자나 부호들과 교류하면서부터 인식이 달라졌다.

 

성공하는 사람도 일반 사람들과 의지력의 총량은 같다. 둘을 나누는 것은 의지력의 사용법이다. 그들은 우리가 무의식중에 낭비하고 있는 의지력을 성공을 위한 행동에만 사용하고 있다. 단지 그 차이만 있을 뿐이다.

주위에 성공한 사람이 있다면 시험 삼아 관찰해보자. 분명 평범한 사람들보다 하지 못하는 일이나 하지 않는 일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예를 들면 부동산과 IT 등 다각적인 사업을 펼치며 그룹 매출고 1,000억 원의 규모를 자랑하는 경영인 무라카미 무네쓰구 씨는 영어를 전혀 할 줄 모른다.

같이 외국에 나간 적이 있는데, 그는 세관이나 레스토랑에서 영어로 질문을 받을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며 가벼운 혼란에 빠졌다.

평소 그의 이미지는 무슨 일이든 척척 해내는 능력 있는 경영인 그 자체였기 때문에 처음 그 모습을 봤을 때는 정말 의외였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니 그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경영이라는 주 무대에서 정력적으로 일하기 위해 그 밖의 다른 일에 쏟을 의지력을 최대한으로 줄이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어는 통역사를 고용하면 된다고 결론짓고 거기에는 에너지를 조금도 쓰지 않는 것이다.

 

내가 존경하는 코치 역시 그랬다. 그는 미국 자기계발계에서 굉장히 유명한 사람으로 소셜 미디어 서비스에 글을 올릴 때마다 댓글이나 공감횟수가 5,000개나 달릴 만큼 주목받고 있는 사람이다.

줄곧 그를 동경해왔기 때문에 꼭 한 번 만나고 싶었다. 그러던 참에 드디어 함께 차를 마실 기회가 생겼다. 그런데 그를 처음 본 순간 어라? 정말 그 사람이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단에 서 있을 때 그의 모습은 깔끔한 슈트 차림으로 굉장한 기품이 있었는데 카페에서 만난 그는 아무리 봐도 그냥 평범한 아저씨였기 때문이다. 오히려 평범한 아저씨보다도 어쩐지 없어 보인다는 느낌까지 받았다.

원인은 금세 짐작할 수 있었다. 실례되는 말이지만 옷이 촌스러웠던 것이다. 사적인 자리였기 때문에 슈트가 아닌 사복을 입고 나왔는데 그 모습이 영락없이 실내복을 입은 아저씨였던 것이다.

처음에는 세미나에서의 모습과 너무 달라서 당황했지만 곧 그것이 그가 그만 둔 행동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사복에 신경쓰는 것을 그만두고 그만큼의 의지력을 본업에 쏟고 있었던 것이다.

 

내 주변 사람을 예로 들었는데 누구나 아는 세계적인 위인이나 유명한 경영인도 마찬가지다. 이것저것 욕심을 내서 모든 일에 평균이상의 결과를 목표로 하는 사람은 크게 성공하지 못한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예외 없이 쓸데없는 일을 하지 않음으로 의지력을 절약하고 있다.

만약 그들이 일반인보다 더 많은 의지력을 갖고 있다면 이런 현상은 일어나지 않는다. 일도 잘하고 영어도 능숙하게 할 수 있고 인간관계까지 좋고 항상 세련된 스타일을 유지하는 슈퍼맨이 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의지력의 총량은 평범한 회사원도 CEO도 똑같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공하는 사람은 일반인들이 무의식중에 낭비하는 의지력을 의식적으로 절약해 본업에 쏟아내면서 대업을 이룬다.

 

 

새어나가는 의지력을 막아라!

-구멍 난 페트병 이론

 

의지력은 페트병에 들어있는 물과 같다. 페트병의 물은 아침에 막 일어났을 때는 가득 차 있지만 뭔가를 생각하고 결심할 때마다 조금씩 줄어든다. 이른 아침에 메일을 확인 한다거나 옷을 갈아입는다거나 혹은 서둘러 신문을 읽거나 갑갑한 콩나물 시루같은 전철 안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는 사이 의지력은 주르륵 새어나간다. 당신이 회사에 도착할 때 쯤에는 이미 절반이나 줄어 있다. 이래서야 생산성 높은 일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페트병의 물은 자동차로 치면 휘발유와 같은 것이라 조금씩 줄어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문제는 대부분 사람이 소중한 휘발유를 무의식중에 별 거 아닌 일에 써버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것을 구멍 난 페트병 이론이라고 부른다.

여기 페트병 두 개가 있다고 치자. 하나는 성공하는 사람의 페트병으로 여기에는 구멍이 나있지 않다. 그들은 할 일과 하지 않을 일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스스로 페트병 뚜껑을 열고 닫아 물(의지력)을 쓰고 있다. 무의식중에도 구멍에서 새는 일이 없기 때문에 회사에 도착했을 때도 물은 3분의 2 이상이나 남아있다.

반면 다른 하나는 평범한 사람들의 페트병이다. 여기에는 여기저기 구멍이 나 있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물이 새고 있다. 그래서 정작 중요할 때 물이 거의 남아있지 않게 되어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것이다.

이 페트병의 구멍을 막기 위해 필요한 것이 하지 않을 결심이다. 일상에 잠재된 쓸데없는 일을 하지 않기로 결심해 구멍은 사라지고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물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결심하지 않을수록 성공은 커진다

- 성공의 역설

 

그렇다면 의지력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지 않을지 생각하기 전에 언제 의지력이 줄어드는지 그 구조부터 알아 둬야 한다.

나는 앞서 옷을 갈아입을 때도 의지력이 줄어든다고 이야기했다. 단순히 옷을 갈아입는 행동으로 인해 의지력이 낭비되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의지력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거나 결심할 때 줄어든다. 예를 들면 잠옷에서 외출복으로 갈아입는 행동으로 인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늘은 어떤 옷을 입지?’라고 고민하고 생각하면서 결심하는 과정에서 줄어드는 것이다.

다만 의지력이란 모든 결심에 일정한 수치로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의지력을 엄청나게 소모하는 결심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그렇지 않은 결단도 있다.

먼저 비교적 소모가 적은 레벨 1단계의 결심은 주체적으로 결심하는 경우를 말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생각하고 결단하는 경우는 구멍에서 물이 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뚜껑을 열어 물을 따르는 상태이기 때문에 물의 사용량을 조절할 수 있다.

하지만 똑같이 뚜껑을 열어 물을 따르는 방식이라도 타인에게 강요당하는 레벨 2단계의 결심은 의지력의 소모가 상대적으로 크다.

예를 들면 자신이 원해서 이사 갈 집을 찾는 것과 재건축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이사 갈 집을 구하는 것 중에서 어떤 경우가 의지력을 더 많이 소모할까? 당연히 후자다. ‘나는 이 집이 편한데. 이사날짜를 미룰 수는 없을까?’ 등과 같은 이런저런 불안과 잡념이 떠나지 않기 때문에 생각하고 결심하는 횟수가 늘어나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지력을 가장 많이 낭비하는 것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행하고 있는 무의식적인 결심이다. 예를 들면 잠옷에서 외출복으로 갈아입을 때 대부분의 사람은 지금 생각하고 결심하고 있다는 자각 자체가 없다.

, 우리는 무의식중에 결심하면서 의지력을 낭비하고 있다. 이러한 레벨 3단계의 결심을 할 때가 바로 구멍에서 물이 새고 있는 상태이다. 결심으로 인한 의지력 낭비를 막기 위해서는 결심횟수를 최대한으로 줄여야 한다. 특히 레벨 3단계의 무의식적인 결심을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이구치 아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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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먹방'에 끌리는 이유

대한민국 마음 보고서, 하지현 지음

먹방과 쿡방

바야흐로 먹방, 쿡방이 대세다. 하정우가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서 탕수육 먹는 장면이 화제가 됐을 때만 해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그냥 멋진 배우가 보여준 의외의 모습에 대중이 열광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몇 년이 채 지나지 않아 음식을 만들거나 먹는 것이 예능 프로그램의 단골 소재가 되었고,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배우들이 맛깔스럽게 음식을 먹는 장면이 작정한 듯 배치되었다.

미션 수행도 없고, 게임도 없고, 벌칙도 없이 그저 23일 동안 시골에서 세끼를 지어 먹는 <삼시세끼>란 프로그램도 인기를 끌었다. 더 나아가 <백종원의 3대 천왕>이란 프로그램은 이른바 토요일의 국민 프로그램 <무한도전>과 같은 시간대에 시청률을 경쟁하는 상황이 되었다.

 

여자아이돌이 코미디언과 탐스럽게 음식을 먹으면서 인기를 끌었다. 채소 몇 개와 토마토 한두 개로 구성된 아이돌 식단을 보다 먹성 좋게 잘먹는 아이돌 그룹 멤버의 모습을 보니 반전의 쾌감이 느껴진다.

또 먹는 것을 진지하게 토론하는 프로그램 <수요미식회>, 거구의 코미디언 넷이서 우악스럽지만 맛나게 먹으러 다니는 <맛있는 녀석들>이란 프로그램까지, 그야말로 음식 관련 방송의 백가쟁명 시대다.

먹는 것을 지켜보는 것부터 직접 만드는 것, 먹으러 다니는 것까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조합이 등장한 셈이다.

 

 

특히 인터넷 TV를 중심으로 먹방이 큰 인기를 끌면서 방송에 나온 몇 명은 인터넷 스타가 되었고 이들이 나온 동영상은 수십만 회의 조회수를 올렸다.

방송에 나오는 셰프들은 이미 스타다. 백주부라 불리는 백종원부터 이연복, 최현석 셰프까지 요리사가 스타가 되어 대중의 환호를 받는 시대가 되었다.

이연복 셰프가 운영하는 중식당은 두 달간의 예약이 이미 찼다고 하고, 블로그에는 집밥 백선생 레시피<냉장고를 부탁해>에 소개된 레시피를 따라서 요리해본 사람들의 후기가 넘쳐난다.

 

 

수십 년 전만 해도 먹는 얘기를 대놓고 하는 사람이 그리 환영받지 못했다. ‘미식가美食家라는 타이틀로 불리는 것도 좋은 이미지는 아니었다.

굳이 아프리카의 기아 난민을 떠올리지 않아도 도처에 굶주림으로 고통받는 이웃이 있었던 것이 불과 수십 년 전까지의 우리나라였다. 그때에는 먹는 것으로 장난치면 안 되고, 먹는 것에 집착하는 것은 바람직한 행동이 아니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던 우리가 어느새 먹는 것에 열광하고, 맛있는 것에 환호하며 전국 5대 짬뽕집을 순례하는 것을 당연시하고, 쿡방을 보면서 직접 요리를 하고, 셰프를 스타로 떠받든다.

모임이나 데이트를 할 때 가능하면 맛있는 것을 먹기위해 동네 맛집을 검색하고, 좋은 식당을 많이 알고 소개해주는 사람은 좋은 주식 종목을 소개해주는 사람보다 환대를 받는다. 도대체 왜 이렇게 변한 것일까?

 

 

아마도 그건 우리의 마음이 헛헛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맛있는 것을 찾아 먹어야만 지금의 이 헛헛함이 해결될 것 같다고 생각해서는 아닐까?

이를 정서적 허기(emotional hunger)라고 한다.

우리가 갓난아기였을 때를 상상해보자.엄마의 젖을 물고 있을 때에는 엄마와 하나가 되어 안전하다고 여기며,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정서적 만족을 느끼는 동시에 배도 불러 육체적인 허기까지 해소할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기는 엄마와 자신이 분리된 존재라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다. 배가 고플 때 알아서 엄마가 젖을 물려주는 것이 아니고 보채고 울어야지만 먹을 것이 들어온다는 점에서 냉엄한 현실을 느낀다.

벽에 그림을 그리면 엄마가 화를 내기도 하고, 춥고 열이 나서 울고 있을 때 엄마가 바로 와서 안아주지 않아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절망감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서서히 배를 채우는 것과 엄마가 꼭 껴안아주고 칭찬을 해주는 것은 서로 다른 길이라는 것을 익히면서 이를 다른 영역으로 분화해서 발달시켜나간다.

 

 

그러나 그 뿌리는 하나다. 우리의 뇌는 그렇게 기억을 하고 있다.

특히 3세까지는 해마라는 명시적 기억을 담당하는 영역이 아직 제대로 기능을 하지 않고 있을 때라, 그 이전에는 감정적 기억을 담당하는 편도라는 영역이 주로 경험을 축적한다.

이때에는 더더욱 정서적 경험과 육체적 경험이 합쳐져 기억의 저장소에 차곡차곡 쌓인다.

죽어라 외웠던 국사나 수학은 기억나지 않지만, 엄마가 처음 해준 국수의 냄새, 아침에 일어나기 싫어 눈을 비비고 있을 때 부엌에서 들려오던 칼질 소리와 보글보글 찌개 끓는 소리 같은 기억은 설명할 수 없는 느낌으로 우리 뇌에 각인이 되어, 그때의 따스함과 안온함을 필요로 할 때 불현듯 소환되고는 한다.

 

 

우리는 힘들고 괴로운 현실을 살아가면서 정서적으로 메말라간다. 누군가에게 밀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는 실망감에, 사람에게 뒤통수 맞고 난 다음의 찌릿함에 온 마음이 탈진된다.

그런데 이렇게 탈진된 뒤에 마음은 쉽사리 충전하기 어렵다. 누가 옆에 있어주기를 원하지만 언제나 내 편인 사람을 곁에 두고 있기도 힘들다.

어른이 되어버렸는데 엄마 품에 파고드는 것도 남사스럽다. 이런 필요를 파고 파고 또 파고들다보니 아주 어릴 때, 아기였을 때의 경험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바로 엄마의 젖을 물고 있을 때 했던 일타쌍피의 경험. 그때 그랬듯이 맛있는 것을 먹으면 육체와 마음 모두가 만족될 것이라는 생각에까지 미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먹을 것을 찾는다. 화나고, 힘들고, 괴롭고, 탈진하고, 마음이 헛헛할 때, 이왕이면 맛있는 것을 먹고 싶고, 함께 나눠 먹으면서 이야기를 하고 싶고, 그렇게 하면 마음이 풀어지고 뭔가 채워지는 기분이 든다.

당이 돌면서 뇌가 활성화되고 맛있는 것을 먹었다는 만족감은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호르몬을 낮추면서 바짝 긴장했던 전투 모드의 자율신경계를 안정시킨다는 것이 의학적으로 증명된 바 있다.

그런 심리적 이유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먹방을 보고, 쿡방의 레시피를 따라하고, 맛집을 메모해두고, 찾아가 사진을 찍어 기억으로 남기고 싶어한다힘들고 지칠 때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넘기면서 지금의 쓰라린 마음에 반창고를 붙이는 것이다.

 

 

먹방을 보는 것에서 조금 더 나아가보자. 남이 먹는 것, 만드는 것을 보다보면 어느덧 나의 추억 속 음식, 소울 푸드soul food를 소환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나만의 추억의 음식을 찾아내고 그 기억을 더듬어서 명확히 하는 것은 정서적 기억을 소환해서 아픔을 중화시키는 힘을 갖는다. 그게 추억의 힘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모두가 각자의 추억의 맛을 갖고 있다. 박찬일 셰프의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기자 출신으로 이탈리아에서 정통 이탈리아 요리를 배우고 돌아와 여러 개의 레스토랑을 운영한 셰프이자, 글쟁이인 저자의 책이다.

그의 이전 책이 요리 수업을 받던 시절과 좋은 이탈리아 요리에 대해 주로 이야기하던 것에 비해, 이 책은 어릴 때의 추억을 소환해서 음식과 하나하나 매치시킨다.

 

일이 풀리지 않고 고민이 많을 때면 중국집에 가서 짜장면 한 그릇을 시켜놓고 기다리는데 이때 복잡한 머릿속이 정돈된다고 한다.

어릴 때 어머니가 열무김치를 넣고 국수를 말아준 기억, 오직 김치와 김치 국물에 깨소금을 탁탁 뿌린 국수였을 뿐이나 누나들 몰래 어머니가 올려주신 삶은 달걀 반 개의 기억은 어머니와 그가 가진 소중한 추억이다.

운동회 날에 어머니가 어려운 형편에도 무리를 해서 밥 한 단, 계란말이와 나물 한 단, 고기나 생선 반찬 한 단, 거기에 과일 한 단을 쌓아올린 찬합도시락을 보자기에 싸서 가져오는 장면을 읽을 때면, 그가 기자에서 요리사로 전직을 하고 여러 차례 새로운 식당을 열면서도 흔들리지 않고 자기 길을 만들어가는 저력은 이런 추억으로 쌓아온 정서적 안정감에 있을 것이라 추정하게 한다.

 

 

 

『심야식당』의 만화가 아베 야로의 책 『술친구 밥친구』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그의 히트작 『심야식당』에서 마스터가 만든 요리들은 도시의 삶에 지친 사람들의 영혼을 채워준다.

그것도 한밤중에나 겨우 한잔할 수 있는 도시의 어두운 곳에 속한 마이너 인생들. 『술친구 밥친구』를 읽으면 그가 왜 이런 이야기를 구상했는지 알게 된다.

책에 등장하는 음식에 얽힌 아베 야로 본인의 사연을 엿볼 수 있는데 자신의 고향 음식인 샛줄멸 튀김, 가다랑어 다다키 등이 그의 추억과 함께 소개된다.

이렇게 어릴 적 추억의 맛을 기반으로 책도 쓰고, 만화도 그리는 능력 좋은 사람들이 많다. 우리는 그러지 못한다고 기죽을 것은 없다. 우리에게는 각자 자기가 갖고 있는 나만의 맛의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먹방을 보면서 침을 흘리고, 쿡방을 보고 어설프게 따라 하는 것도 좋다. 그러면서 한번 내 마음속에 깊숙이 간직해놓았던 나만의 추억의 맛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꺼내보면 어떨까.

새로운 맛집을 찾아가는 것보다, 내가 아닌 남이 먹는 것을 보며 대리 만족을 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으로 나의 지친 영혼을 달래주고, 에너지를 쾌속 충전시켜줄 수 있을 것이다.

추억의 맛이야말로 힘들고 지쳐 너덜너덜해진 자아를 달래줄 영혼의 닭고기 수프이자 나만을 위한 맞춤 처방전이기 때문이다.

 

정서적 허기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실제로 허겁지겁 먹어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평온을 찾고 자존감을 채우는 것이다.

그 중간단계에 나만의 맛의 기억과 여기에 얽힌 따뜻하고 안전했던 감정 기억이 한몫을 하리라 믿는다.

 

대한민국 마음 보고서
하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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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번 선수의 고독한 싸움

먹는 인간, 헨미 요 지음

#대한민국

등 번호 27번이 보이지 않는다. 물 좋은 생선처럼 무리 속에 묻혀 있다. 바로 알아볼 수 있으리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왔는데…….

일본 신문에 실린 그에 관한 기사에는 조국이라는 글자가 다섯 번이나 나왔다. 게다가 결의, 맹연습, 역투 같은 말이 기세등등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런 글을 읽다 보니 27번의 얼굴은 사진이 없어도 짐작할 수 있다. 눈이 반짝반짝 빛나며 이를 악물고 연습에 몰두하는, 무리 속에서도 단연 두드러지는 얼굴.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런 선수가 있기는 해도 27번은 아니었다.

그 기사는 기자가 애써 형식에 맞춰 쓴 것이었다. 선의였겠지만 정확한 정보는 아니었다. 그 주제라면 그렇게 기사를 쓰는 것이 가장 편하다. 알기 쉬운 글, 말하자면 형식이다.

 

이런 생각에 잠겨 있는데, “너희들, 병원에 온 환자야?” 하고 호통 치는 코치의 목소리가 들렸다.

복근 연습 중에 지쳐서 주저앉은 사람이 있었다. 27번이다.

이봐, 똑바로 해.”라고 말하고 싶어 하는 나와 뭐야, 바보같이.”라고 말하려는 듯한 27번이 서로 눈을 마주치고 쑥스러워했다.

 

영리한 눈에 반듯한 얼굴이었다.

한명호(韓明浩), 한국 삼성라이온즈 2군 투수, 열아홉 살. 오사카의 이쿠노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3년에 삼성에 입단할 때까지 아사노 아키조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재일 한국인 3 .

지난 시즌에 1군 등판은 없었다. 2군에서 0승이었다.

 

적응이 빠르고 기초가 잘 되어 있어요. 1994년이 승부처죠.”

 

김중 신임 2군 감독이 말했다.

 

그런데 근성이 없어요. 교포 선수는 근성이…….”

 

옛날에는 김치와 밥만 먹고도 참고 연습했다는 쉰다섯 살의 감독 눈에는 근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럼 조국=분투라는 식이 성립하지 않는 셈이다. 이 시점에 27번의 취재를 그만두었어도 좋았다.

하지만 아직 천진함이 남아 있는 눈빛에 담긴 슬픔의 색깔, 살갗 한 꺼풀 밑에 어렴풋이 보이는 초연함의 색깔 때문에 그만두지 못했다.

왠지 그 두 색깔이 조국근성을 초월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구시 교외의 삼성라이온즈 구장과 기숙사 필승관을 나흘 동안 다녔다.

1군은 오스트레일리아의 골드코스트에서, 2군은 이곳에서 훈련 중이었다.

필승관 1층에 선수 식당이 있다. 푸른 단복을 입은 젊은이들이 하루에 4800칼로리의 한국 요리를 트랙터 셔블이 산을 깎아 버리듯 먹어 치운다.

 

하지만 27번은 “1년 동안 꽤 익숙해졌어요.” 하고 말하면서도 식욕은 왕성하지 않다. 매운 음식을 잘 못 먹는 것이다. 찌개에 갖가지 김치, 불고기 등 날마다 바뀌는 푸짐한 메뉴지만 맵지 않은 음식을 찾기는 어렵다.

이런 경우, 내 세대의 사람이라면 노력한다. 억지로 먹든지, 먹지 못하는 음식은 숨기는 것이다.

27번은 다르다. 무리하지도, 거짓말을 하지도 않는다.

 

처음에는 한 끼는 거르고 닭튀김이나 스시를 먹으러 자주 외출했어요.”

 

지금도 대구시 수성구에 살고 있는 부모가 일본 컵라면, 가다랑어나 꽁치 통조림과 밥에 뿌려 먹는 양념 가루 등을 보내 준다고 한다.

필승관 2층에 있는 그의 방은 온돌만 빼면 거의 일본식이다.

일본인 여자 친구와 신사에서 산 부적이 벽에 걸렸고, 일본 연예인 톤네루즈의 비디오가 있고 레게 CD도 있다.

일본에서 지낸 생활을 색깔에 비유하면 무슨 색이었냐고 한명호에게 물어보았다.

 

좋아하는 색이죠. 핑크와 빨강의 중간쯤?”

 

한국에서 보낸 지난 1년은 짙은 파랑’.

색이 변한 것은 흠씬 두드려 맞은 첫해의 성적 때문만은 아니다. 관계의 차이라고 해야 할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소외감이 있었다.

 

진짜 한국인선수는 한번 친해지면 친형제처럼 대한다. 아무 말도 없이 27번의 치약을 쓰기도 한다. 자신이 원해서 독방을 선택했는데도, “외롭지?” 하며 방에 들어오는 식이다.

경기에서는 교포 따위한테 질 수 없지, 하고 정색하고 달려든다. 27번은 변화구를 던지고 싶은데 포수는 직구로 삼진을 잡고 싶어 한다. 보내기 번트 따위는 하지 않는다.

생활이든 야구든, 한국 음식과 일본 음식처럼 맛이 다른 것이다.

 

하지만 27번은 비난도, 비관도, 낙관도 하지 않는다.

뜨겁고 진한 인간관계에 감탄하기도 하고, 박력 넘치게 승패를 겨루면서 전 야구를 얕잡아봤어요.” 하고 반성하고, 병역으로 훈련을 단념할 수밖에 없는 동료들을 걱정하면서도 그것을 면제받을 수 있는 자기 처지를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가 재일 교포 3세라는 존재로 살아야 할 앞날이다.

아마 고추장이나 부추, 마늘처럼 위를 부글부글 끓게 하고 뇌 속으로 파도처럼 진격하는 진짜 한국의 맛에 몸과 마음도 익숙해지면서 27번이 조국에 적응해 앞으로 승승장구할 것이라고 나는 쓰지 않겠다.

왜냐하면 본인이 이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전 앞으로 10년을 살아도 한국인은 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어째서?

 

일본에서 18년 동안 산 저 자신을 바꾸고 싶지 않으니까요.”

 

한국인처럼 무리하게 행동할 필요는 없다. 진짜 나 자신 그대로가 좋지 않은가?

콧방울이 부풀어 오른, 지기 싫어하는 얼굴이 내 예상을 걷어차 버렸다.

 

그래서 가야쿠 밥(육류, 채소 등 여러 가지를 섞어 지은 밥이다.옮긴이)을 좋아해요.”라고 그리워하는 듯한 표정으로 망설임 없이 말할 수 있다. ‘편히 입는 옷을 사는 것이 취미라고 순순히 말할 수 있다. 일본군 위안부, 강제 연행 문제를 잘 모른다고 말할 수 있다. 경기가 없을 때 일본인 여자 친구가 놀러 온다고 말할 수 있다.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왠지 내 기분은 천천히 느슨해지고 있었다. 좋구나, 생각했다. 내 안의 공식이 무너진다.

기를 쓰고 노력하지는 않는 것이 27번의 법칙이다.

 

맛과 격투를 벌일 때도 조용한 방법으로 한다. 물김치나 설렁탕 등 비교적 담백한 맛을 찾아낸 뒤로는 먹는 것도 견디고 있다.

매운 음식에는 밥을 마구 넣어매운맛을 줄여 먹는 기술도 터득했다. 동화가 아니라, 맛의 타협점을 찾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여기서 좋은 결과를 만들어 일본 프로 야구에서 주목받고 싶다는 먼 꿈을 하루하루 이어 가고 있다.

1994년의 목표는 2군 최다승, MVP.

 

열심히 해요.” 하고 나는 틀에 박힌 말을 했다. 속으로는, 괜찮을까, 했지만.

 

 

대구 거리에서 함께 스시를 먹은 다음 날, 27번이 비밀이라도 털어놓듯 중얼거렸다.

 

사라이(サライ)라는 노래 가사를 정말 좋아해요. 왠지 나를 노래하는 것 같아요.”

 

그때는 몰랐던 노래 사라이를 귀국한 뒤에 들어 보았다. 27번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열쇠가 노래에 숨어 있을 것 같아서.

머나먼 꿈 버리지 못하고 고향을 버렸네라는 가사로 시작한다.

그리고 벚꽃 휘날리는 사라이의 하늘로 언젠가는 돌아가리, 언젠가는 돌아가리, 반드시 돌아가리로 끝난다.

승리해서 가슴을 펴고 돌아가겠다는 노래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의 감상이다.

 

, 그 녀석. 그 나이에 속으로는 패배를 각오하고 한국으로 건너간 건가?’ 이런 생각이 드니 어떻게든, 무슨 일이 있어도 1승을 올려 주길 바랐다.

비록 만에 하나, 전패하더라도 진짜 자신을 바꿀 녀석은 아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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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정말 외계인을 만났을까?

지적 호기심을 위한 미스터리 컬렉션, 맹성렬 지음

워싱턴 상공에 UFO가 출현하다

1952년 7월 19일 늦은 밤 워싱턴국립공항의 항공관제요원 에드 뉴젠트Ed Nugent는 레이더 스크린상에 7개의 이상한 표적들이 나타난 것을 보았다.

당시 그 위치에는 어떤 비행기도 있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그것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잠시 후 그는 그것들이 확실히 비행기가 아님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시속 100마일 정도로 천천히 움직이던 것들이 갑자기 엄청난 속도로 레이더망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워싱턴국립공항 항공관제탑 책임자인 해리 반즈Harry Barnes는 인근의 앤드류공군기지와 볼링공군기지 레이더 책임자들에게 연락했고 그들도 비슷한 표적들을 동일한 위치에서 포착했음을 확인했다.

국립공항 관제탑의 관제 요원 하워드 콕클린Howard Cocklin은 관제탑 창문으로 문제의 괴물체가 포착된 방향의 하늘을 쳐다보았는데, 접시처럼 생긴 비행체에서 청백색의 광채가 나오는 것을 목격했다.

그는 국제공항 관제탑에서는 인근을 비행 중이던 캐피털 에어 항공사 소속 전세기 807편의 조종사 케이지 피어먼S. C. Casey Pierman에게 연락해 이상한 비행 물체들을 목격했는지 여부를 확인했다.

 

당시 17년 조종 경력의 베테랑 조종사였던 피어먼은 마치 유성처럼 빠르게 날아가는 6개의 불빛을 목격했다고 응답했다.

앤드류공군기지가 그 미확인 비행체들에서 가장 가까이 위치해 있었지만 당시 활주로 수리 중이었기 때문에 뉴캐슬공군기지에서 F-94제트기 2대가 출격했다.

하지만 그곳에 도착할 때쯤 표적들은 레이더상에서 사라졌으며 조종사들은 거기서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UFO들의 출현은 그 다음 주에도 계속됐다. 1952년 7월 26일 늦은 밤 워싱턴항공운항관제센터에 또다시 UFO가 탐지됐다.

당시 미 공군 UFO 조사팀이었던 프로젝트 블루 북Project Blue Book에서는 레이더 전문가들인 듀이 포넷Dewey Fournet 소령과 존 홀컴John Holcomb 중위를 국제공항 관제탑으로 파견했다.

그들은 관제탑 레이더 스크린상에 12개의 표적들이 나타난 것을 확인했다. 여름날 워싱턴 상공에서는 기온역전 현상이 종종 일어났고 이 경우 레이더 신호가 대기층으로부터 반사될 수 있었다.

하지만 두 전문가들은 최소한 표적 몇 개는 견고한 금속체에서 반사되는 신호라고 확신했다.

 

밤 11시경 공군사령부의 긴급 명령으로 F-94제트기 2대가 출격해 문제의 위치로 접근하자 UFO는 지난번처럼 레이더상에서 감쪽같이 사라져버렸고 조종사들은 아무것도 목격하지 못한 채 뉴캐슬기지로 돌아와야 했다.

그러자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듯 레이더에 표적들이 다시 나타났다. 이런 지능적인 움직임은 최소한 그 표적들이 기온역전층에 의해 생긴 것들이 아님을 가리키고 있었다.

 

UFO들의 출몰이 지속되자 다음 날 새벽 1시 30분경에 또다시 F-94제트기 2대의 긴급 출격이 있었다. 이번에는 제트기들이 그 물체에 바싹 접근했는데도 레이더 화면에서 표적이 사라지지 않았다. 마침내 조종사들도 그 이상한 불빛들을 목격할 수 있었다.

한 제트기가 UFO들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제트기에서 UFO를 관찰할 정도로 충분히 가까이 가자 UFO는 그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멀찌감치 달아나버렸다.

당시 제트기에 타고 있었던 조종사 윌리엄 패터슨William Patterson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나는 1,000피트 아래에서 그 미식별 항공기들을 따라잡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가능한 최고 속력을 냈어요……. 하지만 그것들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추적을 포기했죠.”

 


이와 같은 사건이 전개되는 동안 포넷 소령은 관제 센터의 레이더 화면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동안 레이더 장치에는 기온 표적이 약 1도 정도의 기온역전을 나타냈다. 하지만 온도차가 너무 미미하여 레이더 반향음을 혼동시킬 정도는 아니었다.

 

1952년 7월 말, 미 전역의 언론들은 백악관 상공에 나타난 UFO들과 이를 추격한 요격기 이야기를 커버스토리를 다루면서 그런 사건들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중요한 화제가 됐을 한국전쟁이나 대선 캠페인 기사를 구석으로 밀어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트루먼 대통령은 관련 부처들에 워싱턴 상공을 침범한 그 괴물체들의 정체를 밝힐 것을 요구했다. 

 

7월 29일, 마침내 공군 관계자들은 2차 세계대전 이래 미국에서 개최된 회견 중 가장 오래고 가장 규모가 큰 합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에는 당시 공군 정보부장인 존 샘포드John Samford 중장, 항공방위사령관 로저 레이미 소장Roger Ramey, 항공기술정보센터의 기술 분석팀장 도널드 바우어스Donald Bowers 대령, 그리고 프로젝트 블루 북 책임자 에드워드 루펠트Edward Ruppelt 대위가 참석했으며 그 밖에 몇몇 민간인 기술자와 레이더 전문가들이 동석했다.

 

샘포드 장군은 워싱턴 상공의 현상을 기온역전 현상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어떤 종류의 UFO도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 기자회견은 여론을 진정시키는 데 도움이 됐다. 7월 30일과 7월 31일자 <뉴욕타임스The New York Times>는 공군의 기자회견 결과를 소개하면서 지난 6년간 모은 수천 건의 사례를 종합해서 내린 결론임을 강조했다.

덧붙여 앞으로의 UFO 연구 목적은 아직 알려지지 않은 천문 기상 현상에 대한 보다 많은 지식을 얻기 위한 것이라는 샘포드 장군의 발표를 소개했다.

그럼에도 언론의 관심은 줄어들지 않았으며 1952년 하반기 동안 미국의 148개 신문사에서 1만 6,000여 번이나 UFO 기사를 다루었다.

 

 

 

NATO 방위군 메인브레이스 훈련에 나타난 UFO 

1952년 중반까지만 해도 UFO에 대한 거의 히스테리에 가까운 대중적 반응은 미국의 현상이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강 건너 불구경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이는 어쩌면 UFO들이 최초 핵보유국이었던 미국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또는 핵을 보유하고 세계 최강국으로 발돋움하는 과정에서 미국이 보인 보안 유지에 대한 지나칠 정도로 예민한 처신의 산물일 수도 있었다.

그러던 것이 1952년 하반기로 접어들면서 유럽에서도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그해 9월 18일 오후 2시경 노르웨이의 하르스타드 커르케네스에서 일하고 있던 3명의 삼림 관리인들이 500미터 상공에 조용히 떠 있는 직경 15~20미터 정도 되는 원반형 괴비행체를 목격했다.

그들이 넋을 놓고 쳐다보고 있을 때 그 비행체는 갑자기 엄청난 속도로 북서쪽 방향으로 날아가버렸다. 이 내용은 미국 CIA에 의해 수집된 노르웨이의 한 신문 보도 내용인데 그냥 사건만을 놓고 보면 이후에 일어난 수많은 UFO 목격 사건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CIA가 이 사건에 주목한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이 사건이 일어나던 시기에 노르웨이 인근 해역에서 대규모의 NATO 군사훈련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 영국, 프랑스, 노르웨이, 덴마크 등 나토 회원국 8개 국가에서 총 8만 여명이 참가한 이 군사훈련의 공식 명칭은 메인브레이스 훈련Operation Mainbrace. 그해 9월 13일부터 25일 사이에 노르웨이와 덴마크 인근 해역에서 진행됐다.

 

이 훈련 기간 중에 많은 참여 군인들이 UFO를 목격했다고 보고했는데 그중에서 공식적으로 보고되어 조사가 이루어진 사건이 영국 공군에서 발생했다.

9월 19일 공군 대위 존 킬번John Kilburn은 아일랜드의 발리켈리에 주둔하고 있던 269비행중대의 공군 병사들과 함께 미티어 요격 제트기가 기지로 귀환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미티어기가 5,000피트 정도 높이까지 하강했을 때 킬번과 병사들은 1,000~ 2,000피트 상공에서 은빛으로 빛나는 원반형 비행체가 동쪽에서 움직이는 것을 목격했다.

 

이 물체는 어느 순간 마치 단풍잎이 떨어지는 것처럼 좌우로 흔들거리면서 하강하기 시작하더니, 멈추고서는 자전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가속해서 무시무시한 속도를 내면서 서쪽 방향으로 사라졌다. 존 킬번은 다음과 같이 그 비행체가 UFO였음을 증언하고 있다. 

 

“이 모든 상황은 15초에서 20초 사이에 일어났다. 그 물체의 움직임은 지금까지 내가 대기 중에서 목격한 그 어떤 것도 아니었으며 그 가속도는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9월 20일에는 메인브레이스 훈련에 참여하고 있던 미국의 제6함대 기함인 항공모함 프랭클린 루스벨트호 선상에서 병사들이 UFO를 목격했다.

이때 항공모함에서 출격하는 비행기들의 사진을 찍으려고 탑승한 종군기자 월리스 리트윈Wallice Litwin은 여러 장의 UFO 사진을 찍었다.

이들이 목격한 UFO는 은빛의 원반 형태로 미국 함대 근처 바다 상공에 떠 있었다.

 

메인브레이스 훈련은 당시 미국의 최고 사령관이었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가 제안하여 시행된 것으로 1952년 훈련 기간 중에 그가 잠시 프랭클린 루스벨트호에 탑승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마침 그가 탑승하고 있던 시기에 근처에 UFO가 출현했으며 그 또한 이를 목격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 주장에 따르면, 9월 20일 커다란 청백색의 빛 덩어리가 항공모함에 접근하여 해수면 100피트 상공에서 10여 분간 머물렀다.

지휘함에 같이 있던 일행들은 너무 놀라서 침묵을 지키고 있었는데 아이젠하워는 그것이 무엇인지 조사해보겠다고 하면서 잠시 나갔다고 한다.

하지만 그 후로 그 괴물체의 정체에 대해 다시는 언급하지 않았다고 한다. 정말로 아이젠하워가 UFO를 목격했는지의 여부는 아직 정확히 판명되지 않았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USS 프랭클린 루스벨트호에 UFO가 아주 가까이 접근했다는 사실이다.

이 항공모함은 세계 최초로 핵무기를 탑재한 선박이었으며 1952년의 군사작전 시 거기에 핵무기가 실려 있었다고 한다.

미국에서 초창기에 UFO가 민감한 군사 문제로 다루어졌던 것은 그것이 미국의 주요 핵 시설 근처를 맴돌았기 때문이다. 로즈웰은 최초의 핵폭탄 부대가 주둔했던 곳이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UFO

트루먼의 뒤를 이어 1953년에 대통령이 된 아이젠하워에 대해서는 UFO와 관련된 여러 가지 루머들이 있다.

그중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것은 그가 공군 기지에서 외계인들과 몇 차례 만나 회담을 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캘리포니아주 팜스프링스의 별장에서 휴가 중이던 아이젠하워가 1954년 2월 20일 밤 무언가 아주 비밀스러운 행보를 했다는 음모론에서부터 출발한다.

 

실제로 그날 밤 AP 통신은 아이젠하워가 팜스프링스에서 심장마비로 죽었다는 오보를 냈다. 그러고는 즉시 이 보도를 철회했다.

AP 통신이 이런 보도를 한 데는 누군가의 제보가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팜스프링스에 있던 누군가가 당시 아이젠하워 주변에 일어났던 심상치 않은 상황을 오판하고 특종으로 제보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그 무언가 심상치 않은 상황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현재 미국 캔자스주 애빌레네의 아이젠하워도서관 공식 기록에 의하면 그날 저녁 아이젠하워가 치킨을 먹다가 치아에 문제가 생겨 치과에 갔다고 한다.

하지만 일부 UFO 연구가들은 그의 당시 치과 기록이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 않다는 점 등으로 미루어볼 때 아이젠하워가 치과를 갔다는 것은 위장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 대신 그가 인근의 에드워드공군기지에 갔다고 한다. 이런 주장을 하는 대표적인 사람은 호주의 아메리카 대학 교수였던 마이클 샐러Michael Salla다.

 

샐러는 아이젠하워가 급히 공군 기지를 간 이유는 다른 태양계로부터 비행접시를 타고 온 2명의 ‘노르딕Nordic’ 외계인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고 말한다.

이 외계인들은 미국이 핵무기를 포기하면 자신들의 우월한 과학기술을 전수해주겠다고 아이젠하워에게 텔레파시로 제의했다.

하지만 아이젠하워는 핵무기를 포기할 생각이 없어서 그들의 이런 제의를 거절했다고 한다. 그리고 같은 해의 다른 날에는 아이젠하워가 ‘그레이Grey’라는 다른 외계 종족들과 회담을 가졌다고 한다.

이 종족들과는 그들이 가축과 인간들을 납치해도 좋다는 협정을 체결했다. 다시 제자리로 되돌려주기만 한다면.

 

그런데 맨 처음 아이젠하워와 외계인에 관한 소문은 그가 1947년에 뉴멕시코주 로즈웰에 추락한 UFO 잔해와 외계인 시체를 보기 위해 에드워드공군기지를 방문했다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보다 그럴듯하게 변형된 것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이런 루머가 나도는 이유는 아이젠하워가 재임 시절 외계인에게 큰 관심을 보였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정말 그가 외계인을 만났을까?

 

 

지적 호기심을 위한 미스터리 컬렉션
맹성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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