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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에서 시간을 분리하는 방법

가장 빨리 부자되는 법, 알렉스 베커 지음

사업으로 1년에 수십만 달러를 벌어도, 그 사업을 유지하느라 일주일에 60시간 이상을 투자하는 사업가가 셀 수 없다. 이들은 사업을 확장하지 못하고, 수백만 달러를 벌지 못하며, 자신의 삶에서 선택권도가질 수 없게 된다. 이 사람들은 사업체를 소유하는 동안 자신의 사업과 거기에서 나오는 돈의 노예로 살아간다. 사업이 알아서 굴러가는순간은 없다. 이는 심각한 문제다. 진짜 부자가 되고 삶의 질을 높이려면 소득에서 시간을 분리하는 일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 친구는 마케팅 사업으로 한 달에 20만 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하지만 혼자 사업을 운영했기 때문에 상당한 시간을 쏟아야 했다. 게다가 돈을 더 벌 수도 없었다. 이미 자신의 시간을 최대한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돈을 벌 동안 그는 시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투자하는 시간에 사업 결과가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일하느라 번 돈을 쓰고 즐길 시간조차 내지 못했다.

 

이런 일은 아주 흔하다. 변호사, 의사, 물리치료사, 마케팅 서비스 사업자, 개인 헬스 트레이너 등 그 밖의 여러 직업군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이 그 악순환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주된 이유는 업무를 자동화하거나 일의 주도권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혹은 다른 사람들을 고용해 자기 수입의 일부를 떼 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친구든 남이든 이런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 내가 똑같이 해 주는 짧은 이야기가 있다.

 

조와 닉이라는 마케팅 전문가 두 명이 있었다. 둘 다 한 달에 10만 달러를 벌었고, 20만 달러를 벌고 싶어 했다.

 

[조]

: 혼자 모든 일을 처리한다. 직원을 고용하기는 싫다. 그는 하루에 12시간을 일하는데 그 점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하지만 사업을 관리하는 데에만 하루에 12시간씩 쓰기 때문에 몇 가지 문제가 생긴다.

문제 1

: 디자인, 지원, 코딩 등의 업무에도 시간을 투자해야 하기 때문에 사업을 키우는 데 온전히 집중할 시간이 부족하다.

문제 2

: 조는 시간을 쪼개서 다섯 가지 영역의 일을 처리한다. 그래서 각각 최선의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닉]

: 한 달 소득 10만 달러에서 인건비로 3만 달러를 떼 개발자에게 1만 달러, 디자이너에게 5천 달러, 사업 지원팀에게 5천 달러, 콘텐츠 제작자에게 1만 달러를 주고 고용했다.

효과 1

: 닉은 월요일 아침마다 팀 구성원과 둘러앉아 각자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파악할 수 있도록 이야기한다. 이는 매일 직원들에게 총 40시간 이상의 능률을 이끌어낸다.

효과 2

: 닉의 사업에서 모든 영역은 해당 분야 전문가가 그 분야에만 집중해서 처리한다. 때문에 결과가 훨씬 뛰어나다.

효과 3

: 닉은 사업을 어떻게 개선하고 키울지 생각하는 데 시간을 투자할 수 있었다. 하루 업무 시간 중 8시간은 사업을 발전시키는 데 집중할 수 있었다.

 

월말에 보니 주말에도 쉬지 않고 일한 조는 하루에 12시간씩 한 달동안 360시간을 사업에 투자했다. 그중 절반의 시간은 단순히 사업을 관리하는 데 들어갔다. 반면 주말에는 일을 쉰 닉과 직원들은 각자의 전문 분야에서 일하며 한 달 동안 총 1,200시간을 사업에 투자할 수 있었다.

단순히 산술적으로만 따져 봐도, 닉이 사업에 투입한 시간이 더 많기 때문에 그의 사업은 성장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사업에 닉이 투자한 시간은 조처럼 제한적이지도 않다.

 

닉은 사업이 성장하는 동안 수익의 최소 30퍼센트를 직원을 고용하는 데 사용했다. 그래서 2년 만에 한 달 소득이 1만 달러가 됐다. 직원들의 임금을 인상했고, 인력을 더 고용하고도 한 달에 최소 70만 달러를 자기 소득으로 챙겼다. 모두 표준 근로 시간만큼만 일하면서 거둔 성과다.

 

그 후 닉은 5천만 달러에 사업을 매각하고 은퇴했다. 사업이 성공적으로 운영되는 데 닉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사업은 쉽게 매각됐다.

 

반면 조는 한 달에 20만 달러의 수익을 올리는 수준까지는 사업을 키웠다. 하지만 자신의 모든 시간을 사업 관리에만 쏟게 되는 시점에 이르자 사업은 정체에 빠졌다. 예상하건대 이후에는 다음 중 한 가지가 일어날 것이다.

 

예상 1

: 조는 평생 하루에 12시간 일한다. 조의 사업은 조의 시간에 기반을 두기 때문에 매각할 수 없다.

예상 2

: 조보다 훨씬 발 빠른 경쟁자가 나타나 더 우수한 상품을 내놓는다. 조는 사업을 유지할 수 없게 되고 결국 문을 닫는다.

예상 3

: 조는 몇 주 동안 휴식한다. 다시 일터로 복귀했을 때 사업은 조의 부재로 손실을 보고 있다. 어느 날 그는 완전히 지쳐서 조금 길게 휴가를 떠났는데 그동안 시장에 변화가 생겨 사업이 완전히 망한다.

 

가장 빨리 부자되는 법
알렉스 베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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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파괴하는 공부 방법, 래디컬 러닝

공부의 철학, 지바 마사야 지음

공부란 자기 파괴다

우선 기존의 자신에게 새로운 지식과 스킬이 더해지는 것이 공부라는 생각부터 버리기로 하자. 공부란 오히려 자신을 파괴하는 일이다. 이렇게 부정적으로 보는 편이 오히려 생산적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위해 공부하는가? 무엇을 위해 자기 파괴로서의 공부라는 무시무시한 행위를 하는가?

 

바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다. 어떤 자유인가? 바로 지금까지 해온 ‘동조’에서 해방되는 자유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주변에 동조하며 살아간다. 회사나 학교, 친구, 가족에게....... 이러한 ‘환경’에 나를 맞춘 후 그곳에서 ‘겉돌지 않으려고’ 애쓴다.

일본 사회는 ‘동조 압박’이 강하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다른 사람과 똑같이 굴라’는 말은 곧 ‘비非동조’의 배제다. 하지만 깊이 파고드는 공부라면 우리를 기존의 동조와는 다른 방향으로 이끌 것이다.

 

그냥 공부가 아니다. 깊이 있는 공부여야 한다. 그것을 이 책에서는 ‘래디컬 러닝Radical Learning’이라고 부르려 한다.

래디컬이란 말은 ‘근본적’이라는 뜻이다. 자신의 뿌리에 작용하는 공부. 바로 그것을 가능한 한 원리적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우리는 동조 압박을 통해 가능성의 범위를 제한받았다. 자유롭지 못했다. 바로 그 한계를 뚫고 인생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젖히기 위해 깊은 공부를 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왠지 떨쳐내기가 쉽지 않다. 그동안 익숙한 환경에서 ‘그 환경에 어울리는 것에 동조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인간은 보통 아는 것이 많아지면 대담하게 행동하기가 어려워진다. ‘옛날에는 참 바보 같았어’라고 말할 수 있는 놀이가 불가능해진다. 과거에는 친구들 속에 섞여서 ‘그냥 동조’하며 바보처럼 사는 것이 소박하게 즐거웠다.

그러다 생각이 성숙해지면 다양한 가능성이 열린다. 그러면 ‘내가 참 좁은 세상에 살았구나’ 하고 깨닫게된다. 하지만 좁은 세계였기에 에너지를 압축하여 곧바로 폭발시키는 바보짓이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나만의 개성으로 노래를 부를 때 투박하기에 비로소 발현되던 박력은 마음잡고 제대로 보컬 수업을 받으면 이내 사라지고 만다.

 

이처럼 공부는 오히려 손해라고 생각해야 한다. 공부란 지난 날 주변에 맞추려 애쓰던 자신을 일부러 파괴하는 행위다.

달리 말하면 공부란 일부러 ‘동조에 서툰’ 사람이 되는 일이다. 내가 제시하는 공부론은 현 시점에서 삶을 변화시킬 가능성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확실치 않은 바람, 불만, 소외감 같은 부정적인 것도 포함한다.

 

자유로워지기, 가능성의 여지를 열기

자유로워진다는 것. 그것은 지금보다 많은 가능성을 생각하고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새로운 자신이 된다는 말이다. 즉 새로운 행위의 가능성을 여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기존의 자신을(전면적이지 않더라도)파괴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이른바 제 2의 탄생이다.

 

회사, 가족, 지역과 같은 ‘환경’이 우리의 가능성을 제약하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우리는 환경을 벗어나 살아갈 수 없다. 특정한 환경에 놓여 있기에 비로소 가능한 일이 있으며, 한편으로 불가능한 일도 있다. 이것을 압축적으로 표현하자면 우리는 ‘환경 의존적’인 존재다. 

이 책에서는 ‘환경’이라는 개념을 ‘어떤 범위에서 타자와 관계 맺는 상태’라는 의미로 사용하겠다. 간단히 말하자면 ‘환경=타자 관계’다. 규모가 작은 것으로는 ‘연애 관계’나 ‘중학교 시절 친구들’도 환경으로 간주해야한다. 규모가 큰 것으로는 ‘일본 사회 전체’나 ‘인터넷 세상’ ‘글로벌 시장’ 등도 마찬가지로 환경이다.

‘타자’란 ‘자기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이다. 보통은 ‘타자’라 하면 다른 인간, 즉 타인을 가리키지만 여기에서는 의미를 더 넓히도록 하자. 부모든 연인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심지어 사과, 고래, 고속도로, 셜록 홈스, 신神마저도 전부 ‘타자’로 간주하기로 하자.

우리는 환경적 제약, 즉 타자 관계에 의한 제약에서 벗어나 살 수 없다. 환경 속에서 살다 보면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우선 순위가 매겨진다. 환경의 요구에 따라 다음에 ‘해야 할 일’이 다른 항목을 밀어내고 고개를 내민다. ‘완전히 자유롭게 살아도 좋은’ 상황이 되면 정작 그다음에 취해야 할 행동을 정할 수 없다. 아니, 아예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행위란 환경 의존적이고 부자유하기에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지금까지 ‘자유롭지 않고 가능성이 한정되어 있’는 상황을 ‘부자유’라고 지칭해왔는데 지금부터는 철학 용어를 가져와 ‘유한성有限性’이라는 말을 쓰기로 하자. 반대로 ‘자유로운 상황’은 가능성이 ‘무한’한 상황을 가리킨다.

무한vs유한. 이 대립 관계가 이 책에서는 매우 중요하다. 무한한 가능성 안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행위에는 유한성이 필요하다.우리의 과제는 유한성(=부자유)을 대하는 자세를 바꾸는 것이다. 

언뜻 모순되는 듯 보이는 이것이 바로 우리가 고찰하려는 바다. 유한성과 함께하면서도 자유로운 상태.

 

목적, 환경의 코드, 그리고 동조

우리가 매일 취하는 행동은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가능하도록 습관화된 것이다. 

환경에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당위가 있다. 당위가 존재하는 환경은 반드시 어떤 ‘목적’을 향한다. 연애 관계를 예로 든다면 ‘관계를 오래 유지’하려는 목적을 위해 라인LINE메시지를 어떻게 쓰면 좋은지와 같은 커뮤니케이션의 ‘당위’가 존재한다. 

 

우리는 환경 의존적이다. 환경에는 반드시 목적이 있다. 환경의 목적이 사람들을 연결한다. 즉 ‘공동화共同化’한다. 환경에서 ‘이렇게 해야 한다’는 당위는 곧 행위의 ‘목적적・공동적인 방향 설정’이다. 이를 환경의 ‘코드’라고 부르기로 하자. 다시 말하면 ‘주변 환경에 맞춰 살아가는 것’은 환경의 코드에 의해 목적적으로 공동화되어 있음을 뜻한다.

이것은 강제적 상황이다. 때로는 그것에 염증을 느낄 때도 있지만 결국 우리는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주변 환경에 맞추고 ‘마는’ 것이다. 환경의 코드에 습관적으로, 마치 중독된 듯 자신을 맞추는 상태를 이 책에서는 한마디로 ‘동조’라고 표현하겠다.

 

동조란 환경의 코드에 자신을 온전히 맞춘 상태다. 반대로 코드에 걸맞지 않은 행위를 ‘하고야 마는 것’은 ‘동조에 서툰 것’이다. 이렇게 되면 주변에서 ‘겉돌게’ 된다. 이 책에서는 동조라는 표현을 우선 환경에 대한 ‘적응’ ‘순응’이라는 뜻으로 사용하겠다.

환경이 바뀌면 코드가 바뀌고 당연히 동조의 형태도 바뀐다. 회사에서의 동조와 중학교 시절 친구들과 술을 마실 때의 동조는 다르다. 같은 회사 안에서도 부서마다 서로 다른 형태의 동조가 존재하기도 한다.

우리는 환경에 따라 다른 얼굴을 보인다. 이것을 ‘캐릭터를 나누어 사용한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사용한다’기보다는 캐릭터가 ‘바뀐다’는 말이 더 어울린다.

 

외부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날것 그대로의 자신’이란 게 과연 있을까?

우리는 타자와의 관계에서 ‘동조하는 사람’인데, 과연 타자로부터 자유로운 상태가 존재할까?

공부의 철학
지바 마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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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독립운동가, 유관순만 생각난다고?

찌라시 한국사, 김재완 지음

내 이름은 정정화라고 해요. 그게 누구냐고? 어떻게 설명한다? 독립운동 하면 다들 김구 선생님과 유관순 동생을 떠올리니, 나도 잘나가던 여자 독립투사인데 말이야.

그럼 내 별명을 하나 소개하리다. 상하이에서 유학을 하면서 동아일보 특파원으로 활동 하던 우승규란 분이, 아 글쎄 나 보고 한국의 잔다르크라고 했지 뭐유. 낯 부끄럽지만 내가 이래봬도 남자들도 하기 힘들다는 독립운동을 꽤나 열심히, 그것도 잘 했다우. 다들 상해 임시 정부 알지요? 임정 요원들 중에 내가 해준 밥 한 끼 안 먹어본 사람 없어요. 여성 독립운동가는 나보다 두 살 어린 유관순 동생만 있었던 게 아니라 정정화란 여자도 있었구나 하고 오늘 하루만이라도 기억해줬으면 해서. 그럼 내 힘닿는대로 한번 이야기해보리다.

 

난 1900년 8월 3일에 2남 4녀 중 얼굴도 안 보고 데려간다는 셋째 딸로 태어났다오. 난 고작 열한 살 때 시집을 갔어요. 우리 시댁도 구한말 고위 관리 집안이었는데 일제로부터 받은 남작 지위를 반납하고 독립운동에 뛰어들었어요. 요즘 말로 하면 금수저가 될 텐데, 부자들이나 기득권 중에 우리 시댁 같은 집안도 있다오. 우리 서방님도 나랑 동갑이었으니 우리는 소꿉장난 같은 결혼 생활을 시작했어요. 헌데 나라꼴이 우습게 되었으니 나랑 서방님은 재미난 기억보다는 서글펐던 기억이 더 많아요. 그래서 더 애틋한 건지도 모르겠지만.

우리가 스무 살이 되던 해에 시아버지와 서방님은 조선에서 모든 것을 버리고 독립운동을 위해 상하이로 떠났어요. 처음에는 조신하게 집안 살림을 하는 것이 서방님과 아버님을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오. 하지만 난 1년 후 생각을 바꾸고 친정 엄마를 찾아갔어요. 나라가 왜놈 손에 넘어갔는데 부잣집 며느리라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암! 나라를 되찾는데 남녀노소가 어디 있어! 그런데 우리 어머니가 날 보내줄는지 걱정이 많았다우. 하지만 내 걱정은 기우였어요. 그러고 보면 우리 어머님도 참 대단한 분이야.

 

“네 시아버님과 남편도 여생을 편히 지내기 위해 상해로 간 것이 아닌 걸 알고 있지? 그곳의 생활은 네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힘들 것이다. 하지만 생활이 어려울 것이라는 이유로 네 앞길을 막고 싶진 않구나. 이 노잣돈은 요긴하게 쓰도록 하거라."

 

너무도 쿨하게 보내주시니 되레 섭섭하던걸요. 그 길로 나는 상해로 떠났는데, 믿기지 않겠지만 혈혈단신으로 국경을 넘었다오. 그렇게 상해 임시정부에 도착해보니, 홀아비 냄새가 어찌나 심하던지. 시아버지와 서방님만큼 많은 분들이 날 반겨주었다오. 제대로 된 집밥 좀 얻어먹겠구나 싶으신 거였겠지만.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내게 새로운 임무가 부여되었어요. 국내를 오가며 독립자금을 모금하는 것이었어요. 1920년부터 9년 동안 무려 여섯 차례 조선을 다녀왔는데,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연통제라는 비밀 연락망과 2명의 비밀 요원이 있었기 때문이라오. 조선으로 가기 위해서는 단동을 반드시 거쳐 배를 탄 후 신의주로 들어가야 했어요. 이 일을 가능하게 해준 2명의 비밀 요원에 대해서 간단히 말씀을 드리리다.

  • 본명 최석순(단동 관할 요원)
    • 나카무라로 창씨개명 후 현직 일본 형사로 위장근무 중.
    • 주요 임무는 신의주로 나가는 임정요원들의 안전한 호송을 책임지고 있음.
  • 본명 이세창(신의주 관할 요원)
    • 신의주 양복점 직원으로 활동.
    • 주요 임무 는 신의주에서 국내 기차편 및 은신처 제공.

일본 순사로 위장 활동 중 이던 최석순님께서는 나를 처음 본 날 몹시 놀라셨다오.

 

“여... 여자였소? 거기다 이렇게 젊다니... 아무튼 먼 길 오느라 고생하셨소. 오늘은 우리 집에 가서 편히 쉬고 내일 신의주로 가는 배를 타도록 합시다. 오히려 일이 쉬울 수도 있겠소. 나이 어린 여자이니 내 여동생으로 위장하면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요.”

 

이렇게 나는 일본 순사의 여동생으로 위장해 압록강 철교를 건너 신의주에 도착해서 또 다른 비밀요원인 이세창을 만났다오. 이 분은 나라가 망하기 전에 는 천대받던 천민이었는데, 자신을 괄시하던 그런 나라를 되찾겠다고 독립운동을 하던 훌륭한 분이었다오. 말투는 무뚝뚝하지만 심지가 굳은 참 사내 중의 사내였다오. 날 처음 만나고 떠나보내면서 한 말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데, 어린 여자가 이런 일을 하는 것에 몹시 감동을 받았던 것 같아요. 무뚝뚝한 말투지만 정과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어요.

 

“거, 몸조심하라요. 내레 솔직하게 한 마디 하갔는데, 젊은 아주머니레 더구나 귀골로 곱게 산 사람이 이런 일을 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시다. 독립운동하는 유명한 사람들이래 하나같이 다 이런 험악한 일을 하는 건 아니디요? 나 같은 놈이나 하는 일 인 줄 알았거든.”

 

이렇게 조선을 여섯 차례나 오가며 최석순 요원, 이세창 요원과 짧은 만남 이지만 동지애를 쌓아가던 어느 날 우리의 비밀 루트가 발각되었다오. 일본 순사로 활동 중이던 최석순 요원은 다행히 도주에 성공했지만, 나는 종로 경찰서로 연행이 되었어요. 나라를 위한 일이지만 막상 어린 나이에 일제 치하에서 악명 높던 종로 경찰서로 끌려가는 길은 너무나 무서웠다오.

 

“이 쥐새끼 같은 년! 네 년 때문에 모가지가 날아간 대일본제국경찰이 몇 명이나 되는 줄 아느냐? 넌 오늘 내 손에 걸린 이상 죽은 목숨이다, 각오해라.”

“내 당신에게 독립운동을 하란 말은 안 하겠지만, 어찌 조선인으로 태어나 일본의 개가 되어 같은 조선인을 잡으러 다닐 수 있소? 해방 후 훗날이 두렵지 않고, 후손들 볼 면목이 없지 않소?”

“이 년이 아직 주둥아리를 나불거릴 힘이 남아 있는 것을 보니 정신을 못 차리고 있구나. 저기 너랑 잘 아는 놈 한 놈이 고문에 못 이겨 기절해있으니 깨어나면 인사나 하거라. 낄낄낄.”

 

온몸이 피칠갑이 되어 쓰러져 있던 분은 신의주에서 양복점 운영으로 위장한 이세창 씨였다오. 아는 척하고 싶었지만 조직을 위해서라도 그럴 수 없었다 오. 이세창 씨가 깨어나자 조선인 순사 김태식은 다시 모진 고문을 시작했다오.

이세창 요원은 끝내 죽음에 이를 때까지 의연하게 조선인 순사 김태식의 고문을 견디셨다오. 이런 분들의 값진 희생을 통해서 우리는 드디어 독립을 맞았지만, 타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우리와 임정 요원들은 고국으로 바로 돌아올 수가 없었다오. 자랑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들은 조선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사람들인데, 조국에게 섭섭한 마음이 들었던 건 사실이라우.

숨가쁘게 달려온 내 인생은 브레이크 없이 또 한 번 시련을 맞는데, 6·25 동란으로 우리 서방님이 그만 납북이 되고 말았다오. 그러던 1951년 9월 어느 날 난 다시 종로 경찰서에 잡혀가게 되었어요. 종로경찰서의 경찰은 나에게 최소한의 인간적인 대우도 없이 갑자기 내 뺨을 후려치더니 자백을 강요하기 시작했소. 독립운동을 하던 내가 해방된 조선에서 조국의 경찰에게 영문도 모르고 뺨을 맞을 줄은 몰랐다오.

나는 다행히 고마운 변호사님의 도움으로 집행유예로 풀려났는데, 그 변호사님은 훗날 유신정권에 항거한 이병린 변호사님이었다오. 역사란 걸 돌아보면 악인도 많지만, 그에 못지않게 훌륭한 의인도 참으로 많은 것 같지 않소. 그래서 희망과 절망이 공존하는 것 같은데 부디 우리 후손들은 나보다는 조금 더 좋은 세상에서 살았으면 하는 게 내 간절한 마음이요. 그리고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지만,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들이 살고 있는 그 세상에는 이제 친일파가 시원하게 척결됐지요?

찌라시 한국사
김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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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이 진짜 사라지는 순간

오늘의 나이, 대체로 맑음, 한귀은 지음

청춘이 사라진 자리에 필요한 것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나왔던 <청춘>이라는 노래는 김창완이 1981년에 발표한 것이다. 그때 그의 나이 스물일곱이었다. 김광석이 <서른 즈음에>를 불렀던 것도 20대 후반이었다. 김창완과 <청춘>을 함께 불렀던 '김필'이라는 가수도 이제 겨우 서른이다.

<청춘>이나 <서른 즈음에>는 모두 '사라져가는 청춘'에 대한 노래다. 

겨우 서른 전후에 떠나가는 청춘을 노래한다는 것이 마흔을 훌쩍 넘긴 사람의 입장에서는 가당찮지만, 가수들의 처연한음색에 마음이 동하는 것은 또 어쩔 수 없다.

 

<청춘>에서 가장 마음에 와닿는 가사는 단연 "날 두고 간 님은 용서하겠지만 날 버리고 가는 세월이야."라는 구절이다. 

나이가 들면 '사랑'보다 '시간'이다. 떠나는 사람은 하릴없이 수용이 되지만 떠나는 세월은 문득문득 원망스럽다. 겨우 스물일곱의 청년이 어떻게 이 진실을 알았을까 싶지만, 그렇기 때문에 김창완은 지금까지 한국의 가장 아름다운 가객으로 남아 있는 것이리라.

 

분명히 알았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보면서 웃다 울다 한 이유, 멍하니 입을 약간 벌린 채 찡그리는 표정으로 웃고 있다가 갑자기 코끝이 시큰해지면서 꺼이꺼이 울었던 이유…. 

그건 <응답하라 1988>이 과거의 꿈과 좌절시킨 꿈을 동시에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과거의 꿈이 보일 때는 웃음 짓다가 좌절시킬 수밖에 없었던 꿈이 떠오를 때는 울게 되었던 것이다.

 

1988년, 나도 고2였다.

꿈이 있었고 그 꿈은 모호했다. 무슨 대학에 가고 싶은지, 뭐가 되고 싶은지, 그런 것은 꿈이 아니다. 그건 그냥 학습된 성취 목표다. 꿈이 겨우 그런 것이겠는가.

꿈은 총체적인 이미지였고, 늘 조금씩 변하고, 그래서 더 포착이 안 되었다. 햇빛 같았고 몽롱하거나 몽환적이기도 했고, 서늘하거나 벅차오르기도 했다. 그런데 그것이 무엇인지 보였을 때 즈음 나는 그 꿈을 좌절시켜야 한다는 것도 함께 깨달았ㄷ. 그 꿈을 좌절시키면서 20대 중반을 넘어섰다.

그 즈음 나도 김창완의 <청춘>을 듣고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애창했다. 한창 청춘일 때, 그 청춘이 사라지고 있다고 애통해하며 조로하고 있었던 것이다.

 

단순히 '과거'가 아니라 '기억'을 보여줘야 했기에 <응답하라 1988>의 10대 인물들은 모두 20대가 연기했다. 

생각해보라, 우리 기억 속 우리의 10대는 지금 우리와 비슷한 모습이다. 길에서 마주치는 진짜 어린 10대의 이미지가 아니다. <응답하라 1988>에서 실제 10대 배우가 연기했다면 우리 기억 속 과거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을 것이다.

 

청춘이 진짜 사라지는 순간

청춘이 사라지는 때는, 멋쩍은 얘기지만, 성욕이 사라지는 시점이다.

한국의 인문학자 K, 영국의 다이애너 애실(<어떻게 늙을까>의 저자)이 공히 한 말이 있는데, 그녀들은 성욕이 사라지고 난 뒤에야 혹은 완경(폐경)이 된 후에야 더 명료하게 자기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는 거다. 

그럴지도 모른다. 성욕이 사라지면 더 차분해지고 객관적이 되고 남녀 사이의 소모적인 긴장감을 가지지 않게 되어 더 현명해지는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면 더 세상을 잘 보게 되고, 예술을 더 잘 감상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 세상을 더 잘 보게 되었다고, 예술을 더 잘 감상하게 되었다고 '말하는'사람은 다소 매력이 떨어진다. 

또한 성욕이 있을 때 바라본 그것이 아무리 왜곡된 상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또한 그것대로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세상은 단 하나의 잣대로 해석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세상은 복안(複眼)으로도 천안()으로도 완벽하게 해석되지 않는다. 그만큼 신비하고 매력적인 것이다.

 

청춘과 성욕이 사라진 자리에 유머가 생겼으면 좋겠다. 유머는 가장 성숙한 방어기제다. 

더 나이가 들고 몸이 아파오고 죽음에 더 가까워지면 두렵고 상처 또한 많이 받게 될 것이다. 그럴 때 유머로 잘 극복하면 좋겠다. 비록 세상을 정확하게 보는 것에 실패하더라도, 세상에 대해서 어떤 현명한 발언을 하지 못하더라도, 한 개인으로서의 윤리를 견지하고 소박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아, 그리고 성욕이 사라진다고는 하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괜한 흥분과 조바심을 조금은 남겼으면 좋겠다. 멋있는 노년의 남자를 보고 약간은 설레었으면 좋겠고, 그 때문에 주책없는 행동을 하게 되더라도 그것으로 또 한 번 유연하게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늘의 나이, 대체로 맑음
한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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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같은 애인만 만나는 사람들 특징

당신과 나 사이, 김혜남 지음

사랑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에 의하면 '준다'는 것의 의미는 자기의 잠재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즉 내가 살아 있고 자신이 충만하기 때문에 나의 능력과 힘을 나누어 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니 사랑을 통해 내가 가진 무언가를 남에게 주는 경험을 한다는 건 아주 뜻깊은 일이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준다는 행위는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준 만큼 받고 싶은 것 또한 사람의 마음이다. 사랑을 주면 사랑을 받고 싶은 게 당연하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자신은 상대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며 그저 주는 사랑이 더 편하고 좋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면, 먼저 그의 속마음부터 살펴야 한다. 그가 대가 없이 주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랑해도 나를 함부로 대하게 놔두지 마라

늘 괜찮다며 화를 낼 줄 모르는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첫눈에 한 여자에게 반해 2년 동안 쫓아다녔고 결국 사귀게 되었다. 그는 그녀가 원하는 것이라면 다 들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담배고 끊고 술도 끊고 출퇴근 때문에 고생하는 그녀를 위해 자신의 차를 내주었다. 덕분에 출근 시간만 50분에서 2시간으로 늘어났지만 괜찮았다.

그뿐이 아니었다. 데이트 비용을 저눕 대는 것도 모자라 그녀가 친구들과 해외여행 가고 싶은데 돈이 없다고 말하자 선뜻 자신의 적금을 깨어 경비를 마련해주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녀는 친구들이 아닌 다른 남자와 해외여행을 떠났다. 그녀에게 그는 쇼핑을 책임지는 통장이자 필요할 때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오는 짐꾼이자 대리기사일 따름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괜찮다고 말했다. 자기는 그녀를 사랑하며, 그녀도 언젠가 자신의 사랑을 알아줄 것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아니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다고 했다. 줄 수 있어 행복하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관계에서 한쪽이 다른 한쪽을 더 많이 사랑할 때, 더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가 되는 경우를 종종 목격한다. 약자는 늘 상대방의 기분을 살피고, 무엇이든 그에 맞추려고 노력하게 된다. 상대방이 그 정성과 배려를 너무 몰라 주면 섭섭하지만, 혹시나 자신의 실수로 상대가 떠난다고 할까 봐 전전긍긍한다.

그녀가 무슨 짓을 해도 괜찮다고 말하는 그도 사랑에 있어 약자다. 하지만 더 사랑한다고 해서 상대방이 그것을 믿고 그를 함부로 휘두르려고 한다면, 그는 그것을 막아야 한다. 그 누구에게도 누군가를 존중하지는 못할망정 함부로 대하며 모욕을 주고, 상처를 줄 권리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의 행동은 그녀에게 자신을 아무렇게나 대해도 괜찮다고 허락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것을 사랑이라고 착각하면서 말이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는 말이 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너무나 슬픈 일이지만 억지로 그 사랑을 붙들고 있어 봐야 망가지는 것은 내 삶일 뿐이다.

내 앞에서도 계속 괜찮다고 말하던 그는 끝내 울음을 터트렸다. 이 상황을 견디기 힘들고 모든 걸 내주는 자신이 비참하다고도 했다.

 

몇 개월 뒤 그는 나에게 안부 편지를 보내 왔다. 그녀와 헤어졌고 생각보다 잘 견디고 있다고, 입버릇처럼 괜찮다는 말을 해왔는데 싫으면 싫다고 말하니까 그게 더 기분이 좋다고. 

 

 

당신과 나 사이
김혜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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