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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미친 짓일까

미운청년새끼, 이진송 지음

절구에 넣고 자근자근 빻아도 속이 시원하지 않은 옛말 중 하나가 “3대 거짓말 중 하나는 처녀의 시집 안 간다는 말”이다. 저 출처 불분명한 ‘카더라’ 때문에 결혼하지 않겠다는 내 신념은 입 밖에 내는 족족 “에~ 그런 사람이 제일 먼저 간다”는 놀림을 소환했으니, 가긴 어딜 간단 말인가 확씨.


다행히 20대 중반이 지나면서 친구들이 하나 둘 결혼하기 시작해서 ‘제일 먼저’라는 놀림은 떼는 줄 알았더니, 이제는 저출산 문제의 주범으로 지목 당하게 생겼다. 결혼을 기피하거나 늦게 하는 것, 결혼해서도 아이를 갖지 않는 것 모두 이기적이고 애국할 줄 모르는 괘씸한 대역죄인이니 오라를 받으라!


2016년 9월 23일에 열린 대한민국 취업박람회에서는 여기저기 ‘일취월장(일찍 취업해서 월급 받고 장가・시집가자)’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조금만 생각하면 곧 이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혼은 취업을 해야만 할 수 있나? 취업의 목표는 결혼인가? 그렇다면 결혼하지 않을, 결혼이라는 제도를 누릴 수 없는 이들은? 왜 기본 값은 장가, 즉 남성인지? 이것은 우리 사회가 N포세대를 바라보는 시선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N포세대의 가장 첫 번째 단위인 삼포세대가 포기했다고 여겨지는 것이 연애, 결혼, 출산이며 이들은 언제나 비장애 남성으로 표상된다.


아니 근데, 정말 그렇게들 결혼을 안 하나? 궁금해서 통계를 뒤져봤다. 2016년 4월 7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혼인・이혼 통계’에 따르면 2015년 결혼 건수는 30만 2,800건이다. 이는 2003년 30만 2,500건 이후 12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라는데, 인구 1,000명 당 혼인 건수를 뜻하는 조組 혼인율은 5.9건으로 사상 최저를 기록했다고 한다.


이는 주 혼인연령층인 20대 후반과 30대 초반 인구가 20만 명 감소한 탓이기도 하지만, 불경기와 실업률의 영향이기도 하다. 결혼이 늦춰지면서 초혼 연령 역시 높아졌는데, 2015년 여성의 평균 초혼 연령은 30.0세였다. 여성의 초혼연령이 30대에 진입한 것은 처음이다. 2005년에 비해 남자는 1.7세, 여자는 2.2세씩 높아진 것을 보면 앞으로도 이 결혼 연령대는 점점 더 높아질 예정이다.


결혼을 ‘비교적’ 안 하는 것도 사실이고, 만혼이 유행이라는 엄살도 결혼 연령대가 높아지는 현상을 보니 이해는 간다. 그러나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이 경제적으로 큰 부담을 초래하고, 여성들의 경력 단절을 동반하며, ‘맘충’ 같은 차별적 단어들이 육아하는 여성에 대한 혐오와 고립을 부추기는 상황에서 단순히 저출산의 원인을 비혼 인구에게만 돌릴 수 있을까


결혼과 육아를 가로막는 현실적 문제들을 외면한 채 인구절벽이 온다는 경고나 국가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위협으로 결혼과 출산을 촉구하려는 것은 개인을 출산 기계로 보는 시선을 증명할 뿐이다. 현실의 시궁창력은 언제나 상상을 뛰어넘는 바, 행정자치부에서는 ‘가임기 여성 지도’라는 것을 만들어 내놓기에 이르렀으니……. 가임기 여성을 인간으로 보는 ‘척’이라도 하기가 이렇게 힘들단 말인가.


게다가 출생율이 아니라 ‘출산율’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도 출산의 주체인 여성에게 책임을 지우려는 의도가 너무 노골적으로 보인다. 경제적 이유로 결혼과 출산을 포기한 세대에 대한 분석과 대안은 이미 충분히 논의된 바 있으니, 나는 좀 다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경제난과 높은 실업률 바깥의 이야기 말이다. 결혼적령기의 한복판에서, 기혼과 비혼 측의 이야기를 골고루 듣는 대나무 숲에 바람을 좀 불어넣어 보자.

 


지금의 2030 여성들은 결혼의 판타지가 통하지 않는 최초의 인류이다. 1980년대의 젠더사이드를 뚫고 태어나 겉으로 보기에는 성차별이 뚜렷하지 않은 시대에, 동일한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알파걸’이나 ‘여풍’ 따위의 단어가 등장하는 미디어를 접하며 자랐다. 결혼은 이렇게 구축한 자아가 시험대에 오르는 장이다. 연애에도 성별 권력이 개입하지만, 이것은 결혼에서 훨씬 더 노골적이고 굳건하게 작동한다. 결혼 적령기 여성들은 인터넷 게시판이나 SNS를 통해 결혼 이후 벌어지는 요지경에 대하여, 시월드의 상상을 초월하는 ‘갑질’에 대하여 숙지하고 있기 때문에 결혼이 사랑만으로 성사되고 유지되는 관계가 아님을 잘 안다.


또한 거의 대부분이 직업을 갖고 있고, ‘취집’을 노릴 거라는 환상 속의 김치녀와 달리 결혼과 출산 이후에도 일하기를 원한다. 직장은 단순히 일하는 공간일 뿐 아니라 아내나 엄마, 며느리라는 사적영역에서의 제한된 역할이 아닌 공적인 자아를 보장하기 때문이다. 이 공적자아는 ‘시월드’의 관용에 따라 평가가 널뛰기하는 불안정한 며느리보다 훨씬 중요하고 안정적이다(경력 단절과 유리천장이라는 차별 역시 견고하지만, 며느리의 인정 투쟁이 훨씬 치사하고 굴욕적이다).


나는 가끔 “며느리는 잘해봐야 본전”이라는 말을 하는데, 이 말을 들은 연장자 여성들은 일제히 웃음을 터뜨리며 “요즘애들은 진짜 다 아네!”라고 응수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라는 식의 판타지가 사라진 자리를 채우는 것은 치열한 일상의 전투들이다. 이 지점에서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느냐에 따라 결혼을 선택하거나, 하지 않는 갈림길이 발생한다. 그러나 각각 부딪치는 문제들의 근본적인 원인들은 유사하다. 조남주의 소설 《82년생 김지영》(민음사, 2016)은 이러한 특성을 고스란히 반영한 1980년대 태생 여자 주인공에게 그 해 가장 많았던 이름 ‘김지영’을 주고, 그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을 그려낸다.


지난 추석, 나는 부모님과 약간의 언쟁을 벌였다. 오랫동안 제사와 차례를 지내는 큰집의 장남과 맏며느리의 둘째 딸로 살아온 나는 더 이상 명절 때 겪는 성차별적인 관행을 견딜 수 없다고 판단했다. 부모님은 나를 차별 없이 길렀고, 할 수 있는 지원은 다 했으며, 가족 제도 안에서 나의 서사는 내가 여자거나 딸이라는 이유로 열등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사투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명절 때만 되면 내가 넘어설 수 없는 어떤 한계들이, <트루먼 쇼>의 엔딩에서 탈출을 감행한 트루먼이 만지게 되는 가짜 수평선처럼 선명해졌다.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대등해질 수 없었으며, 결혼한 여자의 위상이 어떤 것인지 엄마부터 나보다 나이 어린 사촌 올케의 경우까지 똑똑히 보았다. 어릴 때부터 꾹꾹 눌러 참았던 그것은 마침내 한계에 도달했고, 나의 태도를 지적하는 부모님과 충돌했다.


나를 가장 절망하게 한 것은 우리 가족과 친인척들이 대부분 선하고 화목하며 친밀하다는 데 있었다. 차라리 그들이 악랄했다면 나는 명절의 부조리한 풍경을 불화의 탓으로 돌리며 슬픔과 분노를 사사화私事化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사람들도, 어떤 사람들만 일하고, 밥을 늦게 먹고, 어떤 절차에 참여하지 못하는 시스템 앞에서는 공모자일 수밖에 없었다. 개인의 선함은 구조의 문제 앞에서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


개인은 사라지고, 가사 노동력으로서의 성별만이 유효했다. “네가 도와줘봤자 얼마나 일하냐”라는 말을 들었지만 중요한 것은 노동의 양이 아님을, 나는 서러움에 북받쳐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그림으로 그린 듯한 스윗 홈에서 자란 나는 그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떤 희생과 특정 성별, 특정 개인의 특수 노동을 필요로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나는 결혼이나 행복한 가정을 상상하거나 원하지 않는다. 기준에 미달하는 아내 혹은 엄마에게 사회는 얼마나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는가. 나는 엄마처럼 대단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결혼이라는 제도 안의 척박한 땅을 개척할 자신이 없었다.


나는 예정된 낙오자였고, 예비 불량 신부이자 나쁜 며느리이자 이기적인 엄마였다. 나는 결혼을 선택하지 않는 동시에 포기했다. 그리고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나와 같은 연령대의 결혼한 여성들의 모습을 보았다. 자신이 노력하여 쟁취한 사회적 지위에 있으면서, 적어도 가정에서는 남편과 대등하려고 노력하던 그들은 명절에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면서 절망하고, 좌절하고, 무너지고 있었다. 가정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문제의 핵심은 동일했다.

 

미운청년새끼
이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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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하게 헤어지자

내 마음을 부탁해, 박진영 지음

《내 마음을 부탁해》 p.120-123 

 

감정을 흘려보낸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라는 책에는 감정과 관련하여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수도꼭지를 틀어놓고 감정으로 세수를 하라.”

 

슬프고 우울한 감정이 들 때 그것들을 거부하고 억지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일단 그대로 느낀다.

“아, 이것이 슬픔이구나, 외로움이구나”

라고 한껏 느낀다. 그러고 나서 “이제 충분하다. 충분히 슬픔을 느꼈다” 하며 감정을 보내주라는 얘기다.

 

정리하면 다음의 세 단계와 같다.


1. 감정을 있는 그대로 과장하지 않고 한껏 느낀다.
2.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이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며칠 안에 지나갈 것임을 인지한다.
3. 충분히 느꼈다고 생각하면 ‘끝’을 선언한다.
감정을 보내준다.

 

결국 감정을 느끼는 것은 ‘나’이다.

나여야 한다.

감정이 나를 잡고 휘두르는 게 아니라 내가 감정을 느끼고 다스리는 ‘주체’가 되는 것이다.
어떤 감정이 찾아왔는지 파악하고, 필요한 만큼 느끼고, 이제 되었다고 생각될 때 보내줄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살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다양한 감정과 마주친다. 그때마다 휘둘린다면 우리는 일상을 영위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모두 나름의 방법으로 감정 조절을 하며 살아간다. 이런 식으로 감정을 한껏 느끼고 보내주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것이다.

 

다만 조심해야 하는 것이 있다. 감정을 보내기로 했으면 잘 보내줘야 하는데 헤어진 전 남친, 전 여친처럼 시도 때도 없이 다시 그 상황을 떠올려보고 그 감정을 되살려가며 계속 스스로를 괴롭혀서는 안 된다.

 

이를 심리학 용어로 ‘곱씹기rumination’라고 한다. “그때 왜 그랬지?”라는 부끄러움이나 실망감, 좌절, 화 등을 일이 끝난 한두 달 뒤에도 지속적으로 끌어오며 붙들어두고 있는 것이다.

 

혹부리영감의 혹처럼 감정을 보내주지 않고 한 구석에 혹같이 달고 있을 경우 심하면 우울증, 불안증상, 섭식장애 등을 겪을 수 있다.


보내주기로 했으면 깨끗하게 보내줘야 한다.

 

내 마음을 부탁해
박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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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갔던 바다를 다시 찾았다

13월에 만나요, 용윤선 지음

더운물에 몸을 씻고 수건을 뒤집어쓴 채 바다가 보이는 창 앞에 서 있는다. 사흘째 아침이다. 아침마다 바다가 보이는 창 앞에 오래오래 서 있는다. 기도하는 듯, 노래를 부르는 사람의 노래를 부르기 전의 호흡처럼 숨쉰다.

 

“바다 이름이 뭐였죠?”
“협재입니다.”
뒤에 서 있던 숙소 주인이 ‘협재’라고 말한다.

 

바다가 하나라는 생각을 하고 살았다. 그런데 협재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바다는 모두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바다가 사람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바다를 닮아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바닷가 집 사람처럼 오래오래 소리 내어 책을 읽어본다. 어떤 질서를 가지고 풀어헤친 머리카락 같은 바닷물이 움직인다. 이렇게 오래오래 들여다보면 알 수 있는 것들이 분명히 있는데, 당신을 들여다보지 못한 채 당신이 나를 들여다보기만을 바라고 바랐다.


유난히 과일을 좋아했었지. 칠월에는 수박을 좋아했었다. 수박 한 통을 사서 숙소를 옮길 때마다 들고 다녔었다. 지금 이 숙소는 그때 옮겨다녔던 숙소 중 마지막 숙소이다. 아침이면 수박을 썰어 한 접시 놓아두고, 껍질의 하얀 부분을 얇게 썰어서 얼굴에 올려주었었다.

 

“누워봐봐. 이거 올려놓고 음악 틀어주게.
수박 껍질 팩하고 수박 먹자.”

“귀찮아. 당신이나 하시든지.”

 

당신은 음악 소리보다 더 크게 흥얼거렸었다. 그때는 몰랐었다. 수박을 보면 당신이 생각나게 될 줄은. 어제는 숙소 주인이 수박을 세 조각 주었다. 숙소 일층 카페에 앉아 수박과 아이스커피를 먹으며 바다를 한참 보고 있다가 당신을 한번 불러보았다.

 

“당신한테 나는 뭐야?”
“함께 나누고 싶은 우주.”
“무엇을 나눌 테야?”
“풍경, 음악, 오늘 날씨, 음식, 사람 그리고 몸의 냄새.”
“몸의 냄새?”
“함께 숨을 쉬어야 가능한 일이지. 우주처럼.”

 

나보다 더 함께 나누고 싶은 사람을 발견했다고 했다. 태어나서 처음 맥이 풀리는 것을 경험했다. 맑은 물에 푸른 물감이 한 방울 떨어지는 순간처럼 당신을 놓았다. 당신을 놓을 수 있는 것, 놓겠다는 의지가 나에게는 자존심이었을 것이다. 어제는 숙소 주인이 준 수박 세 조각을 모두 먹으며, 기억까지 빼앗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기억으로 각자의 다른 공간을 만들어 그 공간에서 다른 나무를 키우는 방법도 있을 수 있겠다.

그래, 나보다 더 함께 나누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 맞다. 그 사람이 내가 당신을 생각하는 것보다 더 깊이 당신을 생각한다고는 믿지 않지만……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 다른 사람을 발견했다는 말도…… 우리 역사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왜 나는 당신의 숨소리가 자꾸 듣고 싶은가. 당신의 머리카락을 풀어헤쳐놓은 것 같은 협재 바다에서 이토록 익숙한 숨소리가 들리는가.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숙소 주인일 것이다. 숙소 주인의 목소리는 작아서 잘 들리지 않는데 열심히 들으려 하면 속삭이는 듯하다. 작은 목소리 덕분에 그의 미소가 먼저 스며들곤 한다. 전복회가 있다면서 함께 먹잔다. 파도 소리를 들으며 눈을 뜬 아침, 소담스럽게 씻고 바다를 바라보다가 화이트 와인을 곁들인 협재 아침의 전복회. 사흘을 같은 집에 있다보니 조금은 식구가 된 듯하다. 사흘이 아니다. 몇 해 전 당신과 함께 지낸 며칠을 합하면 열흘 남짓이다. 숙소 주인은 늙지도 않는 모양이다. 그대로이다. 전복회를 먹으며 숙소 주인이 우리를 기억하지 않았으면 바라본다.

 

“아침부터 전복 비리지 않으세요?”
“와인과 제법 잘 어울리네요.”
“손님이 선물로 주고 가신 건데 혼자만 맛있는 거 먹기가 그래서. 일찍 일어나시는 것 아니까요. 문을 두드려봤어요.”
“뭐 좀 먹어볼까 그러던 중이었어요.”
“삼 년 만이시죠?”
“…….”
“부탁 하나 드려도 될까요? 두번째 오시는 손님은 제게 특별해요.”
“예. 말씀하세요.”
“다음에 또 찾아주세요.”

 

숙소 주인과 나는 크게 웃었다.

 

“예. 또 와야죠. 또 오고 싶을 것 같아요.”
“방 책상 서랍에 방명록이 있어요.
두번째 오셨으니 잘 아시겠지만……
이번에도 부탁드려요.”

 

나는 방에 들어와 책상에 앉는다. 서랍을 연다. 바싹 구워진 바게트 빵의 표면 같은 두꺼운 공책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 문을 열어준다. 나는 일어나서 창문을 연다. 바닷소리에 귀를 기울여본다. 당신은 방명록을 적었는지…… 기억에 없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겨 읽어본다. 공책이라기보다는 책 같다.
눈에 익은 글씨가 보인다.
당신 같다.
당신이다.
바닷소리가 창문 안으로 밀려들어온다. 귀가 먹먹하다. 당신의 숨소리로 내가 숨을 쉬고 살았음을 알겠다.

 

13월에 만나요
용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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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와 악수하는 법

우리는 나선으로 걷는다 , 한수희 지음

사랑을 통해 우리는 자신을 더 많이 알게 된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 
자신을 더 많이 알게 되는 때는
사랑에 실패한 후부터다. 

 

누군가에게 처절하게 버림받고,
가루가 날릴 정도로 자존심이 분쇄된 후에야
우리는 평생을 외면하느라 노력해 왔던
자신의 진짜 모습을 똑바로 볼 수 있다. 

 

우리가 삶에 대해 느끼는 두려움의 근본 원인, 
우리의 가장 못나고 추한 부분, 
잊어버리려 애썼던 꿈. 
이것들은 그 위에 차곡차곡 쌓아 올렸던 허상들을
억지로 걷어 낸 후에야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다.

 

사랑이 아니었다면
아마 우리는 훨씬 덜 상처받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덜 여문 채로 나이를 먹었을 것이다. 
내가 사랑을 하면서 저지른 실수들은
어쩌면 필연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시간을 돌려 다시 사랑에 빠진다면
그때처럼은 하고 싶지 않다. 

 

그러니까 최소한 사랑 앞에서
나를 약자 취급하지는 않고 싶다. 
나를 존중하고 또 상대를 존중하겠다. 
연애에서 여자가 맡아야 할 역할에 연연하지 않겠다. 
그렇다고 그 역할에서 벗어나느라
깐깐하게 굴지도 않겠다. 
입을 가리지 않고 큰 소리로 웃겠다. 
타협하고 또 타협하겠다. 
농담을 자주 하고 장난을 많이 치겠다. 
미래를 걱정하느라
현재를 불안 속에서 흘려보내지 않겠다. 
소소한 즐거움을 많이 누리려고 노력하겠다. 
나에게 없는 것을
상대에게서 찾으려고 애쓰지 않겠다. 
건강한 인간이 되겠다. 
상대를 내 취향대로 바꾸려고 하지 않겠다.

 

우리는 나선으로 걷는다
한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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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여행해야 하는 이유

우리는 나선으로 걷는다, 한수희 지음

사실 혼자 여행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순간순간 거리에서 개똥을 밟거나
비둘기 똥을 맞는 것 같은 
불운과 불행과 외로움을
어떤 보호막도 없이 홀로 대처해야 한다. 
그때 당신은 이런 질문을 던질 것이다. 

 

내가 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편안한 집과 가족과 친구들과 익숙한 동네를 떠나 
왜 그 많은 돈을 들여 여기까지 와서 이러고 있는 거지?

 

하지만 혼자 여행을 떠나는 건
바로 그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다. 
왜냐하면 자신이 지금 뭘 하고 있는 것인지 안다는 건
정말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 질문을 익숙한 것들이 촘촘히 들어찬 일상에서, 
여럿이서 함께 떠난 북적거리는 여행에서 던지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또 언젠가는 사람들은
그런 질문에서 자유로워진 채로 
하루하루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야 한다. 
인생의 의미라는 것은 
우리가 아무리 알아내려고 해도
완벽하게 알아낼 수 없는 것이다. 
알 수 없는 것을 계속해서 알고자 노력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세상에는 아주 많다. 

 

매일의 일상을 충실하게 살아가며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 
한 번이라도 더 웃음을 터뜨리는 것, 
그것이 훨씬 중요하다. 
인생의 심오한 진리를 파헤치느라
인상을 쓰고 있는 것보다는 말이다.

 

여행을 떠나면 새로운 인생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하는 건 순진한 착각이다. 
미안하지만 새로운 인생 같은 건 여기에도 없으니
아마 저기에도 없을 것이다. 
장소가 바뀌어도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여행에서 돌아오면
새로운 일상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예전과 같지만 어딘지 예전과는 다르다.

 

마음이 조급해질 때는
다섯 시간 동안이나 오지 않는 기차를 
느긋하게 기다리는 인도 사람들을 떠올린다. 
힘들 때면
조용하고 다정한 거리들을 천천히 산책하던 시간과, 
맛있는 커피를 앞에 두고 즐기던 시원한 오후와, 
수영장에서의 망중한, 
산호를 줍던 해변을 기억한다. 

 

이 세상에는 길이 하나밖에 없다고, 
정답은 정해져 있다는 압박감을 느낄 때면 
여행지에서 만난 수많은 인생들을 생각한다. 

 

아마 이런 것들을 위해서
여행을 떠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나선으로 걷는다
한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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